트럼프에 휘둘리는 대만…'남의 일 아니다'[베이징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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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반도체 산업 다시 가져올 것" 트럼프 주장 점차 현실화
빠르게 진행되는 TSMC 미국화…대만 내부에서도 우려↑
방위비 GDP 대비 10%로 올려 미국 무기 사라는 트럼프
"훔쳐간 반도체 산업 약간은 한국에"…다음 타깃은 한국
저성장 빠져 대만 보다 재정여력 부족한 한국이 더 곤란
내란사태까지 겹쳐…전문가 "대화 늦어지면 추가부담↑"

연합뉴스연합뉴스
"TSMC가 '미국 반도체제조회사'로 변화하는 것은 조만간 벌어질 일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친미성향의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을 비판하며 나온 발언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민진당의 밀착이 불편했던 중국 측의 억측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3달여가 지난 이달 9일 대만 폭스콘의 전략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즈푸 산업트렌드 연구소의 린웨이즈 집행 부사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TSMC가 미국에 독립적인 회사를 건설하는 등의 'TSMC 미국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린 부사장은 특히 미국이 '반독점 조사' 카드를 활용해 TSMC의 분할을 압박하거나 TSMC 주식의 72%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가 TSMC의 정부 보유분을 민간에 매각하도록 요구하고, 매각한 해당 주식을 구매한 미국인 주주 주도로 '친미'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법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대만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TSMC의 미국화 전망이 크게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지목해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에는 "우리는 반도체 산업의 큰 부분을 다시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흘전 TSMC는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46조원)를 신규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이미 65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만큼 TSMC의 총 투자액은 1650억 달러(약 240조원)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TSMC의 미국 투자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기술이전도 압박하고 있다. 현재 TSMC가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인텔의 지분을 인수해 운영하는 방안이 물밑에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인텔에 TSMC의 기술력을 이전하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

이렇게 TSMC의 미국화 압박이 커질수록 대만인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져가고 있다. 대만에서 TSMC는 '조국을 지키는 성산(성스러운 산)'이라 불린다. TSMC의 존재로 인해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고 중국도 쉽게 대만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방위비 대폭 증액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후보자는 지난 4일 대만의 방위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GDP 대비) 대충 10%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만의 방위비는 GDP 대비 2.5% 수준으로 라이칭더 행정부는 이를 3% 수준까지 높일 계획이다. 그런데 미국이 요구하는 10%로 방위비 비중을 높이려면 무려 1조 5천억 대만달러(약 60조원)이 추가로 필요해 재정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대만은 자체 무기 생산 능력이 미흡해 방위비 증액은 곧 미국산 무기를 더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대만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5천억원) 상당의 무기를 구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만은 '통일'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특히, 중국에 맞서는 친미·독립 성향을 내세워 집권하고 있는 민진당 정권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정권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일이다.

결국 대만은 관계 유지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TSMC를 중심으로한 대만 반도체 산업의 미국화, 그리고 방위비 대폭 증액을 통한 미국산 무기 구입은 어느정도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대만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그 다음 타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을 향할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의존도가 큰 산업구조, 분단으로 인한 북핵 위협 등 여로모로 대만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협상 양상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오는데 주력하며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에는 "(미국에서 가져간 반도체 산업의) 약간은 한국에 있다"며 다음 차례는 한국이라는 점을 암시했다.

TSMC 투자발표 기자회견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TSMC 투자발표 기자회견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관련해 지난 5일 대만 국책 연구기관인 중화경제연구원(CIER)의 롄셴밍 원장은 TSMC가 먼저 1천억 달러라는 대미 투자액의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이제 그 다음으로 걱정해야 하는 곳은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TSMC와 마찬가지로 자사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에 대한 고율관세를 피하기 위해 향후 미국 현지 공장 추가 건설 등 투자계획을 밝혀야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TSMC가 먼저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를 밝히면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부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해왔다. 그는 지난 대선기간에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자신이 재임하고 있었다면 한국이 방위비로 연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여러 명목으로 돈을 요구할 경우 한국은 대만보다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대만과 달리 한국 경제는 '저성장' 위기에 빠져 있어 기업이나 정부나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머니 머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다 한국 정부는 12·3 내란사태로 인해 사상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할 주체조차 사실상 없는 상태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향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형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는 빠를수록 좋으며 늦어지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분이 많아질 것(롄셴밍 원장)"이라는 분석처럼 시간은 우리편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은 미국에 휘둘리는 대만이 안쓰러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먼저 매 맞은' 대만이 부러워질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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