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10년 전에도 '사람 없어' 걱정…"지체된 정의 정의 아니다"[법정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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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멈출 뻔' 했습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재판관이 최소 7명은 있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규정(헌법재판소법 23조 1항)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을 기준으로 사흘 뒤인 17일 재판관 3명이 물러나 6명만이 남게 되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최고헌법 기관이 '사람이 없어 일을 못 하는' 기능 마비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거죠. 그러자 헌재 스스로 타개책을 냈습니다. 해당 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묘수'이면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10여년 전에도 "공석으로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 침해"

이번 헌재의 결정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의 결과입니다. 임명 이틀 만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위원장. 그는 "헌법재판관 공백으로 자신의 탄핵 심판 절차가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헌재는 이 논리를 받아들였습니다.
 
'7인 재판관' 조항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2024. 10. 14 결정문 中
탄핵 심판은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 3명 이상의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직해 재판관의 공석 상태가 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상 재판 외의 사유로 재판 절차를 정지시키는 것이고 탄핵 심판 사건 피청구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재판관 퇴임이 임박한 만큼 탄핵 심판 사건 피청구인의 ①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고, ② 권한 행사 정지 상태가 그만큼 장기화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이 위원장 사건뿐 아니라 일반 헌재 사건도 줄줄이 심리가 중단될 위기였습니다. 헌재 결정으로 심리는 이어갈 수 있게 됐지만, 예정대로 지난 17일 이종석 헌재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고, 헌재 재판관은 6명만 남게 됐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재판관이 6명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내가 사건 당사자라면?
 
문형배·정정미 헌법재판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에 입장해있다. 연합뉴스문형배·정정미 헌법재판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에 입장해있다. 연합뉴스
10여년 전에도 닮은 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2011년 7월 퇴임한 조대현 전 재판관의 후임자를 찾지 못해 초유의 14개월 재판관 공석 사태가 이어질 때입니다. 이에 환경법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던 한 청구인이 2012년 1월 위헌소송을 냅니다. 국회가 후임자를 뽑지 않아 자신의 기본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요. 그해 9월에는 모두 5명의 재판관(국회 3인·대법원장 2인)이 공석이 됐기도 했습니다.


'퇴임 재판관 후임 선출 부작위 위헌확인 소송' 2014. 04. 24 결정문 中
피청구인(국회)은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공석인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하여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作爲義務·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피청구인은 공석이 된 조대현 전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함에 있어 준수하여야 할 '상당한 기간'을 정당한 사유 없이 경과함으로써, 공석인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하여야 할 헌법상 작위의무의 이행을 지체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재는 헌법재판관이 퇴임 시 제때 후임자를 뽑을 의무가 국회에 있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①국회에는 '상당한 기간' 안에 공석이 된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해야 할 의무가 있고, ②지금 국회가 그 헌법상 의무를 지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국회에도 사정은 있었던 걸로 보이기는 합니다. 조대현 재판관 후임으로 조용환 변호사가 거론됐지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겁니다. 또 국회의장이 바뀌고 18대 국회 임기가 끝나고 총선까지 치러야 했죠.
 
하지만, 헌재는 이를 모두 감안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요. 

"헌법재판은 끊임없이 이뤄져야"…9인 재판관 필요

헌재는 대법원장, 대통령, 국회 추천 몫이 각각 3명씩인 '3·3·3' 구조입니다. 재판관이 퇴임을 앞뒀다면, 다음 후보자는 언제까지 뽑아야 할까요.

헌법재판소법 제6조(재판관의 임명)
③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 또는 정년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④ 임기 중 재판관이 결원된 경우에는 결원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⑤ 제3항 및 제4항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재판관이 국회의 폐회 또는 휴회 중에 그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한 경우 또는 결원된 경우에는 국회는 다음 집회가 개시된 후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

임기 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헌재는 '데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도출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기한을 넘긴 후보자 임명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후보자 검증이 혹여 길어지더라도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측면도 있으니 해당 조항들은 '훈시(訓示)' 규정에 그친다고요. 다만, 가급적 신속하게 '제때' 후임자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A씨의 소송은 어떻게 됐는지 다시 보겠습니다. 당시 헌재는 후임 재판관이 이미 정해졌고, A씨의 소송도 끝나 "실익이 없다"며 재판관 9명 중 '각하 5 대 위헌 4'의 의견으로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전원재판부의 판단을 받고자 했던 청구인의 목적도 달성됐다고요. 
 
반대 의견에 주목할 만합니다. 4명의 재판관(박한철·이정미·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이 사건과 같은 재판관의 장기간 공석 상태가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 단정할 수 없다"며 국회의 행태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따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퇴임 재판관 후임 선출 부작위 위헌확인 소송' 2014. 04. 24 결정문 中
<재판관 4명 '위헌 의견'>

공정한 헌법재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서는 재판관들이 토론 및 합의 과정에서 견해를 제시하고 각자의 견해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 재판관이 공석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상당한 기간 내에 공석인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하지 아니하면 재판관이 공석인 상태에서 헌법재판이 이뤄질 수밖에 없어 심리 및 결정에 재판관 9인 전원의 견해가 모두 반영될 수 없으므로 헌법재판 청구인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받게 된다.
 

늦게나마 9인의 재판관이 선고에 참여했으니,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반박에 대해서도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있듯이 사후에 9인의 재판관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해서 한 번 침해된 기본권이 원상회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헌법재판관 9명이 필요한 이유도 피력했습니다.

'퇴임 재판관 후임 선출 부작위 위헌확인 소송' 2014. 04. 24 결정문 中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9인의 재판관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과 헌법관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헌법재판을 담당함으로써, 헌법재판에서 헌법의 해석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그 견해들 간의 경쟁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헌법 제111조 제3항은 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피청구인으로 하여금 최고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관여하도록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권력의 균형을 꾀하고자 하는 데에 그 근본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퇴임은 당연히 예상, 헌재 '공백' 반복은 심각한 문제"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시청자미디어재단·한국방송광고진흥재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시청자미디어재단·한국방송광고진흥재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다시, 2024년 10월 14일. 이 위원장 사건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헌재는 같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입니다. 스스로도 시간이 이토록 흘렀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7인 재판관' 조항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2024. 10. 14 결정문 中
결국 재판관 궐위로 인한 불이익을 그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이 지게 되는 것이다. 임기제를 두고 있는 우리 법제에서 임기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의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보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의 객관적 성격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헌재는 나아가 재판관 공백 사태 우려에도 직무대행 제도 같은 제도적 보완책이 없는 현행 헌법재판소법의 문제점도 꼬집었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임기가 끝난 재판관이 계속 일을 하도록 하고, 오스트리아는 '예비 재판관' 제도로 헌재 공백을 막고 있습니다.
 
헌법소원을 이끈 한 변호사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책임 방기'"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고려대 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위헌법률 심판을 통해 국회를 통제하는데, 국회가 헌재의 공백을 내버려두면서 역으로 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법소원을 내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이 위원장의 본안 소송까지 그 효력이 유지됩니다. 임시 조치일 뿐이죠. 6인 체제에서 심리는 가능하지만, 6인 전원의 동의가 필요한 탄핵 결정이나 법률의 위헌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도 성향의 김형두·정정미 재판관, 보수 성향의 정형식·김복형 재판관, 진보 성향의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남아있습니다. 여야 대치 속 재판관 임명이 더뎌지는 동안 피해를 보는 이는 국민들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 변론기일에서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걱정스러운 우려를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헌재 공백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2024.10.08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사건 2회 변론준비절차 中
문형배 재판관: 잘 들어보세요. 11월12일 변론 예정인데, 아마도 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6명이 남게 되는데, 헌법재판소법 제23조 1항(7인 심리정족수)에 따라 변론을 열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요. 
 
청구인 측 (국회): 특별히 없습니다. (중략)
 
피청구인 측(이진숙 위원장): 재판부에서 결정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문 재판관: 저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답답한 건 피청구인 쪽 아닌가요. 탄핵 소추가 되고 직무 정지가 돼 탄핵 심판이 열려야 하는데. 다름 아닌 국회가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아 변론을 못 열게 된다면요.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요?
 
피청구인 측: 국회에서 신속히 3인에 대한 재판관을 추천해 선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재판관: (국회가) 하지 않는다면요?

이번에 퇴임한 재판관 후임은 모두 국회가 선출할 몫입니다. 재판관 3명의 선출 절차가 멈춰 버린 건 국회 추천 몫의 분배를 둘러싼 여야 대립 때문입니다. 통상 여야가 1명씩 뽑고, 여야 합의로 나머지 1명을 추천해 왔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의석수에 따라 민주당이 두 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거부하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민주당은 국정감사 이후 후보를 추천하고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차기 재판관 추천 몫을 두고 여야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사람 없어 일 못 하는' 헌재는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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