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가는 '도이치' 첫 단추도 못 꿴 金여사[법정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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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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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 34개월 만에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2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도이치 모터스' 사건이 수년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의혹 초기에는 검찰총장의 배우자였던, 이제는 영부인이 된 김건희 여사가 주가 조작 사건 속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일 겁니다. 
 
1심 판결에서는 10년 전에 벌어진 '주가 조작' 범행의 공소시효가 살아있을지, 그로 인해 김 여사의 거래 시기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지가 쟁점이었습니다. 항소심 관건은 김 여사와 유사한 역할을 한 '전주(錢主)'' 손모씨의 방조 혐의가 인정될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심 판결이 나온 지난해 2월 대통령실은 입장을 내고 손씨의 '무죄'를 김 여사의 방어 논리로 삼았습니다. "김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손 투자자 손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2023년 2월 14일 대통령실 관계자)
 
손씨에 대한 법원 판단이 뒤바뀐다면,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도 출렁일 수 있으니,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오늘의 '법정B컷'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피고인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선고 날로 가보겠습니다.
 

'전주'의 '방조'…무죄에서 유죄로 돌아서던 순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서 계좌가 활용된 이른바 '전주'(錢主) 손 모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서 계좌가 활용된 이른바 '전주'(錢主) 손 모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권순형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권 전 회장 등 피고인 9명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했습니다. 권 전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던 1심보다 무거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장이 110분에 걸쳐 선고를 읽어 내려가고 유죄 심증이 짙어질수록 법정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선고 내내 서 있느라 어깨가 움츠러든 피고인들의 귀도 새빨갛게 붉어 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전주' 손씨는 2010년 '2차 주포' 김모씨의 권유로 가족의 계좌도 동원해 75억원 상당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한 혐의를 받습니다. 그는 두 달 전 최후 진술에서 "저는 전주가 아닙니다. 전주 '짓거리'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습니다.
 
2024.09.12 서울고법 형사5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항소심 선고 中
재판장: 피고인 손모씨는 김모씨(2차 주포)가 도이치 모터스 주식에 관해 시세조종을 하는 점을 알고, 자신의 자금을 조달해 주문함으로써 시세조종을 용이하게 했고…(중략) 손씨는 이 같은 범행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공통의 양형 이유 중 유리한 정상과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매도하지 못해 상당한 손해를 입은 점, 그밖에 환경, 정황 등 이 사건 공판 절차에 나타난 양형 요소 등을 고려해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합니다.
 
1심 무죄였던 손씨는 '주가조작 방조 혐의' 유죄가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이 2심에서 공소장 변경으로 추가한 주가조작 방조 혐의가 인정된 겁니다.
 
재판부는 그가 ①미필적으로나마 주가조작 사실을 알았고, ②주가부양에 도움을 주는 등 시세조종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고 봤습니다. 시세 조종 공범으로 보기까지는 어렵지만, 방조범으로는 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주포' 김씨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가 주요 증거가 됐습니다. 손씨는 김씨에게 "오늘 또 사기치면 용서 안한다.(2012년 3월 21일)", "너 어떡할 거야. 나까지 이 수렁에 빠지게 해 놓고(2012년 3월 29일)"라는 문자를 보냅니다.

재판부는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가 큰 손실을 보자 김씨를 심하게 탓하는 것"이라고 판시하며, "단순히 종목 추천을 받았을 뿐이라면 자신의 책임하에 투자했다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김씨를 탓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손씨가 자금 사정으로 어려울 때는 정범인 피고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정황도 확인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세 조종에 동원"…판결문 속 '김건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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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장에 달하는 판결문을 절반쯤 읽어가다 보면, 김건희 여사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도이치 주가조작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권 전 회장의 혐의를 따지는 부분이죠.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 시세조종에 동원한 계좌의 계좌주로, 증권사 직원과의 대화 속 인물로 나옵니다.
 
2010년 10월 28일 대화입니다. 증권사 직원이 "교수님, 저, 그, 10만 주 냈고", "그, 그거, 누가 가져가네요"라고 하자 김 여사가 "아, 체, 체결됐죠"라고 합니다. 3일 뒤 대화 녹취록도 실렸습니다. 담당자가 "방금 그 도이치모터스 8만 주" "네. 다 매도 됐습니다"고 말하니, 이번에는 김 여사가 "아,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두 건의 녹취록을 두고 권 전 회장은 "김 여사가 증권사 담당자에게 일임해 매매를 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시세 조종 행위에 김 여사 계좌는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맥락상 김 여사의 계좌가 '권 전 회장 등의 의사에 따라 시세 조종에 이용된 계좌'를 보여주는 거라고 판시했습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항소심 판결문 中
그러나 아래와 같은 2010.10.28자 및 2010.11.1자 각 대신 증권 녹취록의 내용을 앞선 문자메시지*의 내용과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권오수 등의 의사 관여 하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증권사 담당자는 그 지시에 따라 주문제출만 하였을 뿐이며, 김건희가 그 후 거래 결과 및 거래금액을 사후적으로 확인하거나 증권사 담당자가 김건희에게 사후 보고를 하고 있을 뿐이고, 피고인 권오수의 주장과 같이 김건희로부터 일임받은 증권사 담당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내용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주가 조작 선수들끼리 주고받은 문자로, '잠만 계세요. 지금 처리하시고 전화 주실듯', '12시에 3300개 8만 개 때려달라해주셈'이란 내용이 오간다. 11월 1일에는 문자가 오가고 7초 뒤 김 여사의 계좌에서 주식 8만주 매도 주문이 제출된다.

재판부는 '시세 조종 동원 계좌'를 판단한 기준도 나열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김 여사의 계좌 3개가 시세 조종에 동원됐다고 봤습니다. 모두 공소시효가 남은 범행 기간입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항소심 판결문 中
<시세조종 동원 계좌의 판단기준>
 
먼저 ①정범인 피고인 권오수 등이 자기의 계산으로 직접 운용한 본인 계좌 및 차명 계좌, ②지인이나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일임하여 정범인 피고인 권오수 등이 그 일임을 받은 계좌에 관하여 임의로 시세조종 행위를 한 계좌는 이 사건 시세조종 행위에 이용된 직접 운용 계좌로 볼 수 있고,
 
다음으로 
③차명계좌나 투자일임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⑴정범인 피고인 권오수 등이 다른 수급 세력과 대가지급, 손실 보장 등을 전제로 의사 연락을 하여 확보한 계좌 ⑵계좌주의 독자적 투자 판단 없이 지시·순응 관계로 주식거래가 이루어진 계좌라면 시세 조종 행위에 이용된 계좌라고 판단할 수 있다.

판결문에는 김 여사와 권 전 회장의 '관계'도 적시하고 있습니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상장 전부터 비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초기 투자자로서 권 전 회장의 지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김건희에게 '1차 주포' 이모씨를 소개해 준 것도 권 전 회장이라고요.
 
 

"그분 전화 들어왔죠?"…"권오수 의사로 운용된 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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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되지는 않았지만, 김 여사는 주가조작 피고인들의 유죄 판단 근거로 계속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그분에게 전화 왔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단순히 김 여사가 계좌를 증권사 직원에게 맡겼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대목입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항소심 판결문 中
<2010년 1월 25일 신한투자증권 녹취록>

김 여사: 네 지점장님
담당자: 아 네, 이사님 지금 4만주 샀구요. 2439원이고 되면 정가에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김 여사: 네 알겠습니다. 그 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담당자: 예예예.
김 여사: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 예.

그다음 날 대화에서도 김 여사는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라고 되묻습니다. 담당자가 "지금 2440원까지 8천주 샀구요. 추가로"라고 한 데 대한 답입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김 여사가 해당 계좌를 직원에게 거래를 일임시켜 두었다거나 증권사 직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피고인 권오수 등의 의사로 운용되고 있음이 확인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소멸한 시깁니다.
 
앞서 언급했듯 도이치 주가조작은 크게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다섯 단계'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검찰이 이 사건을 2021년 12월에 기소했다는 점입니다. 원래라면,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2011년 12월 이전의 주가조작 범행은 처벌할 수 없는 거죠.
 
1심 법원은 여러 건의 범죄 행위를 하나로 묶는 포괄일죄 법적 개념을 들고 왔습니다. 시효가 지난 사건들의 공소시효도 유지할 수 있는 건데, 재판부는 1단계 범행을 제외한 2단계부터 5단계까지의 범행을 하나의 죄로 봤습니다.
 
구분점은 주가 조작의 핵심 '주포'가 이씨에서 김씨로 바뀌는 시기. 그때부터 자금과 계좌의 동원 방법 주가변동의 패턴 등이 달라졌다는 건데, 2심 재판부도 이같은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2010년 10월 21일 이후 범행(5 단계 중 2단계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살아있게 됐습니다.
 

'전주' 닮았지만, 다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서 계좌가 활용된 이른바 '전주'(錢主) 손 모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서 계좌가 활용된 이른바 '전주'(錢主) 손 모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항소심에서 주목받았던 손씨를 떠올려보겠습니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고 법대를 향해 '억울하다'는 취지로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판결로 검찰이 김 여사에게 방조죄를 적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여러 녹취록이 그 근거가 될 뿐 아니라 1단계 주가조작에 이어 2단계에서도 연속으로 위탁된 주식 계좌는 김 여사와 그의 모친 최은순씨 계좌 정도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다만, 손씨와 김 여사, 단순 비교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주식 매수와 관련해 김 여사는 증권사 직원과의 녹취록은 있지만, 정작 주가조작 선수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직접 증거는 현재까지 나온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 여사에게 '방조'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주가 조작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예견했음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검찰은 그동안 도이치 모터스 항소심 판결을 검토한 후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정한 '타임라임'이 다가오고 있는 건데, 검찰은 어떤 판단을 낼까요. 김 여사에 대한 혐의는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상황에서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권 전 회장 등의 불복으로 이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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