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스웨덴 스톡홀름 도심에서 식당 주인과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제한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70만명에 이르는 스웨덴. 하지만 스웨덴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복구를 위해 지난해 10월까지 재정에서 지출한 지원은 미화 280억 달러에 그쳤다. 누적 확진자가 9만 3천여명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누적 확진자가 22만명 발생한 덴마크도 같은 기간 미화 200억 달러 상당의 재정 지원을 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누적 확진자 7만 7천여명 발생에 미화 170억원 상당의 재정 지원을 했고 6만 3천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핀란드는 고작 미화 69억 달러만을 재정 지원했다.
이들 나라들은 확진자 1명 당 적게는 1만 달러에서 많게는 22만 달러를 재정 지원한 셈인데, 60만 달러 정도를 지급한 한국과 비교하면 적은 액수를 지원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복지 국가'로 소문난 이들 북유럽 4개국이 글로벌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이처럼 짜게 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탄탄한 사회복지 시스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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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OECD 통계 종합.
OECD 주요 국가의 공공 지출과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분석한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편적 복지 체계를 갖추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현금 지원(재정 지원)은 물론 유동성 지원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편적인 공적 사회 서비스와 보편적인 현금 지원이 균형적으로 확대된 북유럽 복지 국가에서는 이번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추가 지출이 덜 필요했다"고 말했다.
평상시의 복지 체계가 워낙 탄탄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써야 할 재정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들 나라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한국의 2배 이상이다. GDP 대비 정부의 공공사회지출 규모는 한국이 12.3%인 반면 핀란드는 29.1%, 덴마크 28.3%, 스웨덴 25.5%, 노르웨이 25.3%다. OECD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수치다.
이들에 비해 사회 복지가 부실한 OECD 국가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재정 지원을 쏟아 붓거나 유동성 지원을 대폭 늘렸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정부의 공공지출 비율이 18.7%로 보편적 사회복지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은 코로나19 재정 지원을 GDP의 11.8%까지 끌어 올렸다. 한국의 3.5%보다 3배 정도 크고 절대액으로 따지면 무려 44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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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지출 비율이 18%인 캐나다 역시 재정 지원을 12.5%까지 확대했고 호주도 11.7%에 달했다. 뉴질랜드는 19.4%의 공공지출에도 코로나 재정 지원을 19.5%로 늘렸다.
윤 교수는 "공적 사회 서비스가 취약하고 선별적인 소득 보장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복지국가는 현금 지원 비율이 공공사회지출 수준만큼 높았다"고 분석했다.
OECD 국가들은 결국 평소 사회복지를 강화하든가 아니면 한시적 지원을 대폭 늘려 코로나19에 대응한 셈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 지출과 코로나 관련 지원은 OECD 주요국 가운데 하위 수준이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 공공지출 비율 12.3%는 OECD 주요 19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가장 높은 프랑스(3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IMF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재정 지원 규모를 GDP 대비로 산출한 결과도 한국(3.5%)이 핀란드(2.6%)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대출 등 유동성 지원 규모는 한국이 10.3%로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공공지출+재정 지원+유동성 지원'의 총 합계를 내보면 19개국 가운데 한국이 두 번째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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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은 평소의 사회복지 지원도 약한데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시적 지원도 충분하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은 왜 이것도 저것도 지원하지 못했을까? 한마디로 국가 부채 부담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부는 81조가 넘는 추경 예산을 책정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재난지원금과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사용했다. 본 예산이 아닌 5차례에 걸친 추경을 통해 편성되다 보니 67.5%는 국채 발행으로 메워졌다. 이 과정에서 국가 채무는 GDP의 41.2%에서 48.2%로 1년 사이 무려 7% 포인트가 뛰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추경 확대 편성 요구에 맞서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야당과 재계도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며 사실상 지출을 줄일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지출을 줄이기에는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 정부의 방역 조치로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을 받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재산권 침해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손실보상'을 요구하고 헌법 소원까지 제기한 상태다.
이한형 기자
'코로나19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이미 발생한 손실액이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며 소급 적용까지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직접 피해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코로나 이후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로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 수와 실업자 수가 IMF 경제 위기 다음으로 나빠졌다"며 "가계의 소득과 부채도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는 110만 8천명 늘어 149만명이 증가했던 IMF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 2009년 금융 위기 때는 실업자가 89만 4천명 늘었고 지난 2003년 카드 대란 당시에는 82만 1천명의 실업자가 늘었다.
또한 지난해 4분기 소득5분위배율도 4.72로 전년 같은 기간의 4.64보다 악화됐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는 말이다.
이 위원장은 "재정의 역할과 책임의 상당 부분이 민간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코로나 위기 이후 극심한 양극화와 기초체력 부실로 경제가 활력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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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OECD 역시 한국에 대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국가 채무 우려 없이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증세'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출 확대는 필수적"이라며 "증세를 하면 더욱 여유있는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총 세부담이 낮다"고 설명했다. OECD가 2019년 기준으로 파악한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한국이 27.4%로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낮은 것은 물론 OECD 평균치인 33.8%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중상위 소득의 개인과 법인에 한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사회연대세'를 제안하고 장기적으로는 보편적인 누진 증세를 주장했다.
사회연대세는 과표 4600만원 이상 개인에게는 소득세를 5~15% 포인트 인상하고 법인세는 과표 200억원 초과 구간부터 3% 포인트를 인상해 3년간 부과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소득보장, 자영업자 손실보상, 사회연대세 신설 제안 입법청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연대세 이외에도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이고 자산가들의 부동산 세제와 금융자산 세제도 강화할 것도 주문했다.
해외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증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일 법인세율을 6% 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19%인 법인세율을 오는 2023년 25%까지 올리기로 한 것. 영국이 법인세율을 인상한 것은 1974년 이후 반세기만이다.
리시 수낙 재무장관은 '어려울 때 정부가 돕고 있으니 돈을 많이 번 기업과 개인이 (국가)부채 상환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고 공평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현행 21%인 법인세율을 28%까지 인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 등 일부 주들도 부유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다. 한겨레 신문이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4.7%였지만 '증세에 반대한다'는 응답도 59.8%나 됐다. 지난달 연합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코로나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응답이 82.7%를 차지했지만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더 늘리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9.3%나 됐다.
이에 따라 재정의 칸막이를 낮추고 조세감면 제도를 정비하는 등 재정의 효율성을 우선 높이고 한시적인 증세부터 시작해 누진적 보편 증세를 장기적, 단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