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와 야스쿠니는 동격, 세계유산 황당"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0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日, 가미카제 유서와 강제징용지 세계유산 등재 추진

 



-가미카제, 지원제였다고 볼 수 없어
-中과 연대해 논리적 반박자료 만들자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이 미쳤나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희자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 추진협의회 대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일하다 죽어갔던 강제노역 장소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신청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 지자체는 한술 더 떠서 가미카제, 그러니까 2차 대전 말기에 자살공격대의 유서와 편지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건 주변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로 치닫고 있는 건데요, 이 문제 짚어보죠. 먼저 강제노역 장소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즘 한숨도 못이뤘다는 분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유속이세요,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대표님 나와계십니까?

◆ 이희자> 네.

◇ 김현정> 이 대표님 아버님이 강제징용을 당하신거죠?

◆ 이희자> 네.

◇ 김현정> 언제 어떻게 끌려가셨어요?

◆ 이희자> 1944년 그때 가셔서 돌아오시지도 않았고, 나중에 제가 활동하다보니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기록을 알게 됐죠.

◇ 김현정> 끌려갔다가 돌아오신 분도 있는데 아버님은 끝내 못 돌아오신 거군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미카제'의 자살특공대원이 남긴 유서(사진=NHK캡쳐)

 


◆ 이희자> 그렇죠. 일본은 돌아가셨다고 연락 자체도 안했으니까.

◇ 김현정> 이 대표님 몇 살 때 끌려가신 거예요?

◆ 이희자> 제가 13개월.

◇ 김현정> 그럼 아버지 얼굴 전혀 기억안나시겠네요?

◆ 이희자> 전혀 안나죠. 13개월이면.

◇ 김현정> 일제 만행 때문에 이 대표 삶에서는 아빠라는 존재는 사라져버린 거네요?

◆ 이희자> 마음속에만 남아 있죠.

◇ 김현정> 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 있습니까?

◆ 이희자> 네. 사진은 한 장 있어요.

◇ 김현정> 딱 한 장 있습니까?

◆ 이희자> 네.

◇ 김현정> 그 사진보면서 아빠 생각을 달래야 하는 거군요.

◆ 이희자>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이번에 일본이 조선의 강제 징용자들이 착취당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 그 현장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는 어떠셨습니까?

◆ 이희자> 미쳤다고 생각했죠.

◇ 김현정> 미쳤다?

◆ 이희자> 미치지 않고는 그럴 수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강제징용 그 자리 자체를 그대로 두면 영원히 강제징용이라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포장을 해서 거기를 관광지로 만들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속셈이겠죠. 요즘에 아베 일본 총리 TV에 나오는 것보면 저 사람이 사람인가, 미친 광란의 행보를 하고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뭔지 모르게 쫓기는 듯한, 여유롭지 못하고. 저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런 속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유튜브 영상화면 캡쳐)

 


◇ 김현정> 일본은 여기가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이다 라면서 4개현, 28개 시설을 신청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하시마섬이라면서요?

◆ 이희자> 하시마섬이라는 곳은 죽음의 섬이라고 불려졌고요. 축구장 두 개 만한 크기의 섬이었고 거기는 해저탄광이 있었는데요. 거기에서 계속 가스폭발이 나고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 살아남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어서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하시마섬은 죽음의 섬이다(라고 한다).

◇ 김현정> 기록에 남아있는 걸 뒤져보니까 1944년부터 45년 사이에는 이 하시마섬에 많게는 800여명의 한국인이 끌려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하 1천M가 넘는 갱도에서, 그 열악한 환경에서.

◆ 이희자> 굶어서 죽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도망가려고 한게... 그냥 죽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죽음의 섬이다 라고들 하는 거죠.

◇ 김현정> 사실은 이 하시마섬이 지금 일본에서도 관관광지로 쓰이고 있다고요?

◆ 이희자> 네. 관광지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거 보면서 혹시라도 참회를 할까 우리는 기대를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 미화시키려 하는 거네요?

◆ 이희자> 하시마 섬이라는 곳이 죽음의 섬이라고 불려지니까, 일단은 어떻게 하든지 포장을해서 죽음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탈피시켜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모든 것이 그때 우리가 식민지 속에서 강제동원됐고,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이런 것이 자연적으로 포장이 될 것 아니에요.

◇ 김현정> 일본 섬이 있는 곳이 아베의 고향 아닙니까? 그래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도 있더라고요?

◆ 이희자> 야마구치 현이 아베의 고향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가 총리 시절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태어난 그곳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서 이런 것을 다 포괄적으로 안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마구치도 해저탄광이 있어요.

◇ 김현정> 일본정부가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시다면 이 기회에 하시죠.

◆ 이희자> 일본이 언제까지나 피해가려고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이웃나라와 좀 더 미래를 향해서 갈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폈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우리정부도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알려나가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이희자 대표님 오늘 고맙습니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의 이희자 대표님먼저 연결했습니다. 그런데 강제노역지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의 한 지차체에서는 가미카제 특공대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신청을 한다는 거죠. 중앙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공식적인 망언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도망언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뭔지, 세종대학교 호사카 유지 교수 연결해서 들어보죠. 호사카 유지 교수님, 안녕하세요?

◆ 호사카 유지> 안녕하세요?

◇ 김현정> 가미카제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이게 쉬운 말로 ‘자살 특공대’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죠?

◆ 호사카 유지> 맞습니다. 카미카제는 신풍이라고 그렇게 쓰고 가미카제, 신의 바람이라고 그렇게 뜻은 그런 곳인데요. 일단 1944년 태평양전쟁 10월 20일에 최초 공격대가 창설되었습니다. 그때는 25기였는데 주로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특공으로 실시하고요. 그곳이 상당히 확대돼가지고 전체적으로 1만 4천 명이 특공대로 사망했다 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후반기에 가면 갈수록 4개로 편성된 특공대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특공 공역이 이뤄졌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영상화면 캡쳐)

 


◇ 김현정> 대원들이 천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원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정말 자원부대가 맞습니까? 태평양전쟁 100%.

◆ 호사카 유지>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했다고 할 수가 있는데, 사실상 조직적으로 준비된 사람이라도 할 수 있죠. 요미우리 신문 회장인 와타나베 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그러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고 사실상 특공대원들은 자신을 포함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하고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도 합니다.

◇ 김현정> 조종사 대부분이 무척 어렸다면서요, 나이가.

◆ 호사카 유지> 전체적으로 어렸다기보다 연령은 상당히 다양했습니다.

◇ 김현정> 다양했습니까?

◆ 호사카 유지> 말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특공대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요, 어린 사람들은 15살. 상당히 많이 어린 병사들이 참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럼 거기 혹시 조선인 학도병들도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습니까?

◆ 호사카 유지> 거기 지란 특공기지에 한정시켜서 말씀드리면 11명의 조선인 병사가 출격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김현정> 기록이 남아 있는 어느 한 지역의 특공대들 거기만해도 11명의 조선인이있었다.

◆ 호사카 유지>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많다.


◇ 김현정> 그러니까 적의 전기를 타고 적에 돌진을 한다, 내가 폭탄이 되서 돌진하는 거잖아요?

◆ 호사카 유지> 가미카제는 일단 연해의 큰 배를 노렸습니다. 아주 큰 그러니까 함대를 노린 것입니다.

◇ 김현정> 이게 효과가 있기는 있었습니까?

◆ 호사카 유지> 처음에는 연합군을 많이 놀라게 만들었죠. 그러니까 전술적으로는 상당히 위협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러나 말기에 가면 일본이 상당히 불리한 그러한 전쟁 상황을 맞이했는데 그 것을 전환시키는데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 김현정> 분위기는 반전 못시켰다는 말이군요. 도대체 이 카미카제를 세계 기록유산으로 신청한 곳이 어딘가 봤더니 가고시마현의 미나미 큐수 시네요. 어떤 곳입니까?

◆ 호사카 유지> 거기 미나미큐수시에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여러 개 특공기지가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 시 안에? 특공대 기지가? 사실은 2차이대전 당시 고백한 안네프랑크의 일기가 이미 유네스코의 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2차 대전의 가해자인 일본 카미가제의 편지를 나란히 유산으로 등재시켜달라, 이건 상식적으로 어불성설 아닌가요?

◆ 호사카 유지> 예, 그리고 지란 특공평화 회관의 특신으로 보면 야스쿠니 신사하고 똑같습니다.

◇ 김현정> 똑같아요.

◆ 호사카 유지> 예. 5월 3일에 매년 위령제를 실시하고 있고요. 그 위령제,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사자들을 신으로 신격시키는 위령제와 같습니다. 완전 똑같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뭐라고 햐냐면 전사자, 특히 여기서는 특공대로 전사한 사람들의 영혼을 여서 초혼해서 당신들은 정말 잘 싸웠고 당신들의 생애에는 현재 일본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영혼을 만족시키는 위령제를 실시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하고 똑같습니다.

◇ 김현정> 그럼 야스쿠니 신사를 문화재로 등재한다는 거나 똑같은 꼴이네요?

◆ 호사카 유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평양 전쟁을 완전히 미화하는, 즉 침략전쟁이 아니었고, 일본의 기초를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그러한 특공대원들이었다고 하는 거죠. 물론 신사가 아니기 때문에 신으로 승격시킨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야스쿠니 신사하고 똑같습니다.

◇ 김현정> 아니 참, 지자체는 저러고 있고 또 동시에 중앙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그러더니 그게 정부 공식입장이냐고 질문을 하니까 일본 총리대신을 암살해서 사형판결 받은 인물이다 이렇게 공식정리를 해 버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현상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 호사카 유지>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고요, 잘 짜여진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현정> 연결되어 있다.

◆ 호사카 유지> 한국 중국이 추진한 안중근 기념관, 거기에는 반대하면서 동양 평화론자였던 안중근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 침략전쟁으로 감행한 그런 기록물이나 그러한 기록물,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키려는 잘 짜여진 일본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 김현정> 말씀하시던 중에 ‘잘 짜여진 계획’, ‘잘 짜여진 플랜’에 의해서 지금 조직적으로 하나가 돼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이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지금 시간 별로 없습니다만 어떻게 대응해야 현명할까요?

◆ 호사카 유지> 예를 들면 이번 내용, 그리고 지난해에 일본에서 문화유산 신청한 내용에 대해서 그곳이 세계문화유산이나 기록유산으로 될 수 없는 이유를 주목하고 또 중국과 연대해서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을 하고, 그 작업내용을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등... 이런 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0

0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