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밤 10시 44분 광주의 한 택시회사 주차장.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더니 말릴 틈도 없이 불을 붙였다.

이 남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택시기사 48살 정모씨.

놀란 동료가 소화기를 가져와 급하게 불을 껐지만, 정씨는 하루 뒤인 24일 오후 숨을 거뒀다.

숨진 정씨는 왜 분신을 했을까?

정씨는 23일 당일 낮 나주 고향 집을 찾았다.

집 한구석에 있던 삽을 들고 나갔다 오후 5시쯤 집으로 돌아온 정씨는 할머니에게 "여자를 죽여 묻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린 뒤 밤 10시쯤 광주로 출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직장인 택시회사 주차장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경찰은 정씨의 분신 이후 수사에 착수했다.

택시기사 정씨가 자신의 말대로 정말 여자를 죽였는지, 죽였다면 어디에 시신을 유기했는지, 그리고 왜 본인은 분신을 했는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선, 정씨의 택시 뒷좌석에서 많은 양의 핏자국이 발견됐다.

사건이 심상치않다고 여긴 경찰은 본격적으로 정씨의 행적을 추적해 나갔다.

단서는 정씨의 휴대전화에서 잡혔다.

통화내역을 살펴보니 피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여성 몇명이 추려졌다.

이들 가운데 49살 A씨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의 행적을 쫓던 끝에 정씨와 A씨가 광주의 한 식당에서 점심무렵부터 술을 마신 흔적이 잡혔다.

경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분신 전 고향 집에 들러 삽을 가지고 나갔다는 사실로 볼 때 정씨가 A씨를 살해한 뒤 땅에 파묻었다면 고향집 근처 즉, 나주가 분명했다.

택시 운행기록장치 분석에 들어간 경찰은 나주 저수지 주변에서 정씨의 회사택시가 머문 것으로 나왔다.

현재까지의 추적 성과를 바탕으로 경찰은 24일 날이 밝자 마자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저수지 주변을 샅샅이 훑기 시작한 끝에 A씨 명의로 된 신용카드. 청구서 등이 담긴 여성용 가방과 피 묻은 채 망가진 휴대전화가 잇따라 발견됐다.

사건은 이제 확실해졌다.

수색인원 2백명이 주변을 훑고 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수색을 벌였다.

혹시 몰라 잠수부를 동원해 저수지 바닥도 뒤졌다.

오후 2시 45분. A씨는 저수지 주변 경사진 땅에 묻혀 낙엽에 덮인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A씨는 목 부위에 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흔적과 머리 뒷부분에 강한 충격을 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범행 동기였다.

하지만, 살인을 고백한 정씨도 무참히 살해당한 A씨도 이미 숨진 뒤라 답을 줄 수가 없었다.

탐문끝에 이혼한 정씨는 주변의 소개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를 만났고 두 사람이 몇 차례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함께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