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인데… 낯선 도로명주소에 '배송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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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스마트폰으로 찾아가는 형편… 열 중 아홉은 구 주소 사용하려 해

(자료사진)

 

올해부터 전면개편된 도로명 주소 때문에 설 대목을 앞둔 배송업계가 고민에 빠져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설날 연휴는 추석과 함께 해마다 찾아오는 이른바 '우편물 대목'이다. 각종 선물이 택배 등으로 오가기 때문.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올해는 전년대비 16% 정도 더 늘어나 1370여 만개의 물품이 우체국을 거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추석보다 덜한데다 불경기로 예전보다 물량이 줄었지만, 여전히 평소보다 2배 이상 배달 물량이 뛰어오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편물 배송업계는 올해부터 옛 주소를 대체한 도로명 주소 때문에 일거리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걱정이 커지는 모순에 빠져있다.

물론 우체국을 중심으로 관련 업계도 만반의 채비를 마치려 노력해왔다. 업체에 따라서는 신·구 주소 가릴 것 없이 병행 표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면, 현장의 기사들에게 새 주소 체계를 교육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의 주소가 일거에 바뀌는 상황에서 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속내다.

A대형마트 관계자는 "특히 아파트 단지처럼 구획이 잘 정리된 지역은 큰 문제가 없지만, 골목이 미로처럼 뻗어있는 도심의 구시가지에 물품을 배달하려면 한숨부터 나온다"며 "애로사항이 많아 누구나 옛 주소를 더 선호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장 직접 물품을 나르는 택배 기사들부터 익숙하지 않은 새 주소보다 옛 주소방식을 더 선호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B택배업체 관계자는 "운송장에 새 주소가 써 있으면 그때마다 기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예전 주소를 확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고객과 통화해서 위치를 확인한다"며 "아무래도 일을 여러 번 하니 예전만큼 원활하지 않지만, 나라 방침이니까 어쩔 수 없는 형편"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더구나 기본 정보인 주소부터 헷갈리니 단순히 배송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운송사고까지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C택배업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송파구에는 가락로가 석촌동에 있지만, 예전에는 삼전동에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헷갈리는데 가락로에 갈 물품이 엉뚱하게 가락동으로 가는 형편"이라며 "배송지가 헷갈리면 자연히 배송이 늦어지고, 곧바로 고객 불만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생선, 과일 같은 식품은 퀵서비스로 빨리 배달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잦아서 신경이 곤두선다"며 "평소보다 작업 속도가 느려지는 바람에 제대로 배송했는데 왜 늦었냐며 고객이 항의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하나의 물품에 2개의 주소를 중복 확인하느라 일이 2배로 늘면, 평소에는 견딜 만하더라도 물량이 폭주하는 설날 연휴에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D택배업체 관계자는 "일일이 인터넷으로 다시 확인해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에 하나 잘못 배송되면 재확인하는데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며 "설날 선물 특성상 물품을 받을 사람이 이사 가는 바람에 반품할 때가 많은데 물량이 몰리는 상황에서 이중으로 작업할 생각을 하니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일부 업체는 정작 고객들조차 새 주소를 몰라 옛 주소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E택배업체 관계자는 "전체 택배 물류 시장에서 새 주소로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90% 이상이 기존의 동(洞) 주소로 들어온다"며 "하루에만 수백만 건의 택배가 들어오기 때문에 적은 양은 아니지만, 사실 새 주소를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우리 업체는 혼란이 적은 편"이라고 웃었다.

하지만 F택배업체 관계자는 "고객들이 새 주소에 대해 우리보다 더 모르기 때문에 엉뚱한 주소를 적기도 한다"며 "고객에게 연락해 옛 주소와 대조해서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몇만 건씩 해야 하는 형편이라 지금은 괜찮아도 설날에는 물류 대란이 올 거라는 예측까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도로명 주소가 익숙해지면 더 편하다고 강조하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시민들이 견뎌야 할 불편함이 너무도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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