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때의 일, 일부는 아직 기억나
-NASA유학 끔찍, 항상 혼자였다
-실패했다는 평가에 침묵으로 응대
-모든 걸 잘해야 영재? 절대 아니다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웅용 신한대 교수
지금의 40대, 50대들에게 한국의 천재 누가 떠오르십니까, 질문을 하면 아마 십중팔구는 이분의 이름을 떠올릴 겁니다. 바로 김웅용. 1960년대에 4살 나이로 4개 국어를 하고 5살 때는 일본 후지TV에 출연해서 동경대 교수가 낸 미적분문제를 풀었죠, 5살짜리가. IQ 210.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입니다. 8살 때는 미국항공우주국 NASA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서 연구원 활동을 했고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김웅용 씨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5년 만에 귀국을 했고 그 뒤로 충북대에 입학을 해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영재교육에 실패한 케이스다, 세간이 떠들썩했는데요. 그러던 그가 그제 신한대학교에 교수로 임용이 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화제인터뷰에서 직접 만나보죠. 신한대학교 김웅용 교수 연결이 돼 있습니다. 김 교수님, 안녕하세요.
◆ 김웅용>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아직은 교수라는 호칭이 어색하시죠?
◆ 김웅용> 그렇습니다.
◇ 김현정>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신다는 얘기까지는 제가 들었는데. 어떻게 교수가 되신 거예요?
◆ 김웅용> 그동안 공부도 조금 했고 또 연구도 조금 했습니다. 운이 좋은건지 기회가 닿은 건지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 김현정> 직장 다니면서도 꾸준히 논문 쓰고 공부하고 강단에도 종종 서고 이러다가 교수가 되신 거예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그 롤러코스터의 정점은 아마도 4, 5살 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나라 방송에서 4개 국어 구사하는 게 소개가 되고 일본 후지 TV 나가서 미적분 풀고. 그때 생각이 혹시 나세요?
◆ 김웅용> 네, 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천재는 천재시네요. 4, 5살 때 생각이 나세요?
◆ 김웅용> 기억이라는 것이 자극이 많이 있거나 이렇게 되면 계속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2, 3살 때 기억도 좀 갖고 있고 그렇거든요.
◇ 김현정> 2, 3살 때 기억이 나세요?
◆ 김웅용> 네. 그냥 보통 기억이 아니고 예를 들어서 누가 잡아가려고 했다거나 유괴를 하려고 했다거나 이런 기억들은 굉장히 큰 기억이거든요.
◇ 김현정> (웃음) 저는 큰 기억도 안 나는데. 알겠습니다. 어쨌든 4, 5살 때 후지TV 가서 미적분 풀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부모가 잡아서 교육을 시키고 영재교육을 한다고 해도 5살 짜리가 미적분 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당시 김웅용 어린이는 풀었어요. 그리고 8살 때 NASA초청으로 미국을 가셨죠?
◆ 김웅용>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때부터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고요. 어떠셨던 거예요?
◆ 김웅용> 그러니까 머리로 하거나 예를 들어서 문제를 푼다거나 하는 건 가능했는데요. 그밖의 동료들하고 어울리는 것들은 제가 불가능했습니다.
◇ 김현정> 8살 짜리니까, 아무리 똑똑해도 8살은 8살인데.
◆ 김웅용> 그렇습니다. 우선 책상이라든지 이런 크기가 안 맞았고요. 그 다음에 일이 끝나고 나면 같이 어울릴 때 와인이나 맥주나 한 잔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것도 저는 할 수가 없었고. 그밖에도 미묘한 어떤 인종간의 갈등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인종갈등. 그때 70년대니까요, 하기는.
◆ 김웅용> 그렇습니다. 동양인이나 흑인이나 이쪽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 그 다음에 제 또래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한 20살 정도 차이가 났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치관이라든지 생각하는 것들이 저랑 많이 달랐습니다. 항상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 김현정> 외톨이로 혼자. 부모님도 같이 안 가신 거였어요. 제가 어떤 인터뷰에서 보니까 조금만 더 미국에 머물렀더라면 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했을 거다,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 김웅용> 그렇습니다.
◇ 김현정> 자살까지도 생각했을 정도로 어려운. 다시 시간 돌린다면 절대 8살 때는 미국에 혼자 안 가시겠어요.
◆ 김웅용> 어쨌든 지금이라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끔찍한 생각에 절대 가고 싶지 않습니다.
◇ 김현정> 절대 안 간다. 그래서 5년 만에 돌아왔고 검정고시를 치러서 대학입시까지 봤는데. 그런데 소위 우리가 스카이라고 부르는 서울의 명문대가 아니고 충북대, 물론 지역의 명문 국립대입니다마는 세간의 기준으로는 아니, 왜 세계적인 천재가 서울대를 못 갔어, 실패한 천재 아니야 이런 얘기 들으셨어요.
◆ 김웅용> 많이 들었습니다.
◇ 김현정> 어떠셨어요?
신한대 김웅용 교수
◆ 김웅용> 그런데 실패했다라는 자체가 극히 주관적인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저는 어쨌든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던 곳을 빠져나와서 편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해서 왔는데 굳이 실패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저는 그건 이해는 안 갔지만 어쨌든 그걸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 대답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침묵으로 지냈습니다.
◇ 김현정> 침묵으로, 나는 실패한 천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 김웅용> 천재라고 하는 그 잣대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 김웅용> 저는 천재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힘들었던 곳을 그냥 나왔을 뿐인데도 전체 올려놓고 그 다음에 다시 떨어뜨린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 김현정> 이제 이해가 가네요. 그러니까 나는 그냥 평범한 나야, 나인데, 김웅용이라는 사람인데 누군가 나를 천재다, 특별한 아이다라고 띄워놓더니, 세상이. 또다시 너는 실패한 천재야라고 한도 끝도 없이 떨어뜨리는 그 사람이 싫으셨던 거군요?
◆ 김웅용>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그냥 파묻혀 지내셨어요? 쏟아지는 언론인터뷰도 거절하시고?
◆ 김웅용>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아주 평범하게 사셨어요.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그러면서 틈틈이 논문 쓰고 교단에 서는 꿈꾸면서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그러면 직장에서 주위 동료들은 김웅용 씨가 그 김웅용이라는 걸 몰랐습니까?
◆ 김웅용> 처음에는 몰랐을 거고요. 얼마 전에 언론에 조금 나오면서부터 그때부터 알기 시작했고. 그러나 그 이전과 지금하고 똑같이 대했기 때문에 저는 동료들이 항상 좋습니다.
◇ 김현정> 직장인 동료들이 알고 깜짝 놀라지는 않아요?
◆ 김웅용> 저 있을 때는 그렇게 표시를 안 냈기 때문에 모르겠는데요. 아주 똑같이 대해줬습니다.
◇ 김현정> 똑같이, 평범하게. 혹시 지금도 IQ가 200이 넘으십니까?
◆ 김웅용> 그건 모르죠. 제가 테스트를 해보거나 한 건 없으니까.
◇ 김현정> 안 재보셨어요? 아마 지금도 넘으실 것 같으세요?
◆ 김웅용>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김현정> 사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금 하시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김웅용> 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김현정> 사실은 지금도 제2의 김웅용, 제3의 김웅용이 이런 신동들이 TV에 나옵니다. 그리고 세상은 놀라고 주목하고. 보면서 어떠세요?
◆ 김웅용> 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보면 본인이 아니고, 본인 생각이 아니고 주변에서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보고요.
◇ 김현정> 만들어지는 천재들, 만들어지는 신동들?
◆ 김웅용> 상당히 많다고 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요즘 영재교육이라는 것을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영재를 찾아내서 교육을, 적절한 교육을 시켜줘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고 퍼센테이지로 말합니다. 지금은 5%의 영재교육을 시키고 앞으로는 10%를 시키겠다,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게 만들어지는 영재가 아닌가 싶어서. 또 영재라고 하는 건 각 뛰어나거나 특수한 분야가 한 군데씩 있습니다. 제가 늘 받았던 게 뭐냐하면 너는 왜 스케이트를 못하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 김현정> 너는 천재인데 왜 스케이트를 못 타느냐?
◆ 김웅용> 그렇습니다. 다 잘해야 되는지 알고 있어요.
◇ 김현정> 그렇군요. 영재에 대한 개념도 잘못됐고 그저 영재를 많이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고방식도 고쳐야 된다는 말씀. 잘못하면 어른들의 욕심이 진짜 영재, 진짜 천재를 망칠 수도 있겠네요.
◆ 김웅용>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김웅용 선생님,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 교수가 되는 과정보다 훨씬 험난하게 교수가 되셨어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그 꿈을 저희 응원하겠습니다. 조용히 박수 치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아이들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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