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6일 전격적인 야스쿠니(靖國) 참배에 대해 일본 내 전문가들은 개인적 신념, 경제와 미일관계에 대한 자신감,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앞으로 집단 자위권, 개헌 등을 둘러싼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우파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과, 일단 경제 중시 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렸다. 한일정상회담 개최와 한일관계 복원은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데 대해 전문가들의 예상이 일치했다.
다음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일본 내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이다.
◈ 오코노기 마사오(小比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아베 총리가 취임한 지 만 1년인데, 이번에 참배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그런 의식, 위기감이 있었던 것 같고, 지지자들에게 답하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 주변에는 '한국에 양보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의 여론도 그러하다. 결국 그런 여론을 감안한 참배로 보인다. 미국이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지만 집단 자위권,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등 현안을 둘러싸고 현재 일미관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참배 강행의 배후에 있는 것 같다. 외교정책의 관점에서는 현명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과의 관계는 야스쿠니 참배 여부와 관계없이 쉽게 개선될 수 없다고 보지만 최근 한일 간에는 외교관계를 복원할 기회가 보이는 것 같았다는 점에서 이번 참배는 아쉽다. 한국과의 관계개선도 당분간 어렵게 됐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을 전후반으로 나눠 아베 총리의 행보를 보면 전반기에는 경제정책을 중시하며 지지를 받다가 후반기에 특정비밀보호법 등 안보 관련 보수주의 현안에 치중했다. 이번 참배를 계기로 다시 경제정책 중시 쪽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다음 1년의 전반은 성장전략 등 경제를 강조하며 떨어진 인기를 만회한뒤 후반기에는 다시 보수주의 정책에 치중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 겸 현대한국연구센터장아베 총리 개인의 야스쿠니에 대한 집착이 컸다고 본다. 총리 본인 임기 안에 한국,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일본의 힘이라면 그런 식으로 해도 한국과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해올 수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베 총리 임기 안에 한국, 중국과의 정상회담 개최는 쉽지 않게 됐다. 특히 2015년 일한 수교 50주년은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가 될 전망이다.
개헌 등을 둘러싼 아베 총리의 우파적 성향이 일본 사회에서 '다수 의견(majority)'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국 정권의 안정성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아베 정권 안에서도 해야할 보수주의 현안들은 해야 한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장기 집권을 위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 아베 총리는 그 두 세력간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은 결국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개헌은 시작은 할 수 있겠으나 아베 정권 안에 마무리하긴 어려울 것이다.
◈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본인의 신념으로 야스쿠니 참배를 밀어붙인 것 같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 효과로 경제가 회생 기미를 보이자 외교관계가 나빠지더라도 정권에 큰 영향이 없다는 인식으로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듯하다. 아베 총리로서는 결국 내년에도 근린국 외교에서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인식인 것같다.
경제에 치중하며 자신의 신념이 담긴 보수 현안들은 뒤로 미룰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일, 중일관계가 단기간에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일단 마찰을 감수하고라도 보수 현안들을 먼저 처리한 뒤 한국, 중국과의 관계는 나중에 다시 구축하자는 생각을 한 것같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발함으로써 지역에 긴장과 대립이 고조되면 집단 자위권, 개헌 등 우파적 현안들을 추진하는데 순풍으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일 공조를 위해 한일관계 수복을 강조해온 미국도 당황할 것이다. 미국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에는 역사문제에서의 신중한 자세를,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촉구해왔는데 두 축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