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박근혜 대통령이 그제(1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뭔가 정국해법의 카드를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오히려 정국은 날씨만큼이나 냉랭하게 얼어붙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에도 국회를 전격 방문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3자회담을 했지만 성과는커녕 정국이 더 꼬였다.
대통령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를 방문하는 건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를 다녀가고 나면 꼬였던 정국이 풀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꼬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왜 국회만 다녀오면 정국 더 꼬이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9차 본회의에서 취임 후 첫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뒤 국회를 두 번 방문했나?= 취임식을 포함하면 3번 방문한 것이고 취임식을 제외하면 두 번 방문한 것이다. 한 번은 여·야 대표와 '3자 회담'을 위해 또 한 번은 그제 '2014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을 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12월 31일 당선인 신분으로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 참석했고 취임 전인 2월 7일 국회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한 긴급 회동에 참석했다. 그리고 2월 25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했으니까 당선된 뒤에는 모두 다섯 차례 국회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방문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 그렇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방문하는 건 바람직하고 좋은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역대 대통령 중 4번째이다. 지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고,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국회에서 직접 시정연설을 했으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4번째로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대통령들은 취임 첫해만 시정연설을 직접하고 취임 2년차부터는 총리에게 대독을 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매년 정기국회 때마다,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며 국회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는 일이 역대 대통령들보다는 자주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정연설을 한 뒤 정국은 더 꼬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등 정치 현안에 대해서 해법이나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것이라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이 꼬인 정국을 풀거나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국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시정연설 직후 야당이 주장한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 구성을 전격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18일 시정연설 직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검 도입 등 현안에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시정연설 직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말씀은 많았지만 정답은 없었다. 미지근한 물로는 밥을 지을 수 없다"고 비판했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야당과 국민이 시정을 요구한 것은 하나도 시정되지 않은 유감스러운 내용이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여전히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말은 많았으나 정답은 없었다. 취임 후 국가기관의 잇따른 불법 행위로 인해 정국 혼란을 초래하게 한 당사자임에도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이 모든 책임을 정치권에 전가시켰다"고 비판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대통령만이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기대에 못 미쳤다"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평가했다.
민주당은 황교안 법무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해임촉구결의안을 제출하면서 대통령 시정연설 후 정국이 더 얼어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아니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하면 받아들인다고 했지 않느냐? 그건 진전된 발언 아니냐?=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정치의 중심은 국회입니다. 저는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저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정부는 여야 어느 한쪽의 의견이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해주신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이고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고", "여야가 합의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라는 얘기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진전이 있는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이 발언을 보면 국회에 모든 걸 주겠다는 것이고 가이드라인을 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은 풀라고 했던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민 의원은 "그렇지만 새누리당이 보이고 있는 반응을 보면 그 진정성을 알지 못하겠다"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특검수용 불가입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나친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며 "특검 수용은 불가능하다. 당내 의원들의 반발을 설득할 길이 없다"고 말했고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절대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지난달 31일 회의 때와 입장 변화 전혀 없는 것. 한마디로 원론적인 대통령의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대통령의 발언이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축소하기에 바빴다.
대통령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국회에서 뭐든지 논의해서 합의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선심을 베푸는 척하면 여당은 진심은 그건 아니라고 발을 빼면서 정국은 더 꼬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대통령의 이 발언은 아주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인 발언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입법부인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그게 법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 발언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발언이라는 얘기다.
▶지난번 국회방문 때에도 정국이 더 꼬였던 것 같은데?=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3자회동을 했다. 당시에도 모양새는 갖췄지만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이후 정국은 더욱 꼬였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회담에 대해 "지난 3자 회동 추석 앞두고 얘기 나눴는데 일곱 가지 요구한 것을 대통령이 한 가지도 받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성과가 컸다. 박 대통령의 속마음이 어떤가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정기국회가 상당기간 공전됐고 그러면서 결산심사와 예산안 심의가 늦어졌으며
시급하다는 민생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이 국회만 다녀오면 정국이 더 꼬이는 거냐?= 전문가들이나 정치권의 분석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통령이 '정치를 무시'하거나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통보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었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정치난맥상을 풀 사람은 대통령이다. 야당은 코너에 몰려 있고 여당은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 대통령은 풀지 않으니까 서운함과 실망감 배신감 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시정연설에서 교과서적인 얘기만 하고 갔다. 그러면 새누리당이 실제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더 강경하다. 이는
공은 여·야로 넘기면서 새누리당에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정치 메커니즘(대화와 타협)이
작동되지 않는다. 정치가 초라해지고 위축된다"라고 분석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정국이 꼬이면 청와대(대통령)는 공을 여당으로 넘기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부담이 되니까 시늉만하면서 야당을 공격하고 그래서 야당은 다시 청와대를 공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여당이 공격하면 여당이 풀어야 하는데 거꾸로 여당이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방어하면서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취임 9개월 동안 정치가 꼬여있는데 국정책임자로서 유감이나 반성, 사과가 없다"면서 "대통령이 정치를 무시하면서 정치는 소모적이고 대립적이고 갈등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이다" 면서 "그런데 정치와 무관하거나 정치에서 벗어난 것처럼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 때문에 정국이 꼬이고 있다.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정치를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회를 다녀가면
정국이 더 꼬였다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야당은 대통령에게 대한 기대가 크고 얽힌 정국의 고리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는데 대통령은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정국이 더 꼬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해결하라고 하는 건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이지만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 1인 지배체제로 독주형 독선 형인데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국회에 미루는 건 책임회피"라면서 "대통령이 국회를 인정하고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첫 시정연설을 마치고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사실 특검문제는 대통령이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문제는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최창렬 교수는 "지금의 당청관계는 수평관계가 아닌 수직관계다. 따라서 대통령이 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여·야 협상에 미루는 것은 특검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역대 특검을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지난해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의 경우 대통령 가족들이 연루된 문제여서 여·야가 합의하더라도 대통령이 받아들일지가 관심사였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였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당이 재의결을 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문제였지만 대통령이 수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직후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의 경우 여소야대 상황이었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이 6.15 남북정상회담 당사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어서 거부권행사 여부가 관심사였는데 총리인준을 위해 호남의 민심이반을 예상하고서도 노 전 대통령은 특검을 수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옷 로비 특검'과 '이용호 게이트 관련 특검'도 여·야 교착상황을 김 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면서 꼬인 정국을 풀었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문제는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결부돼 있는 만큼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국정원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만큼 특검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꼬인 정국을 풀 해법은 없는 거냐?= 사람이 하는 일인데 풀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해법의 핵심은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심판자가 아닌 것이다. 여·야가 합의하면 존중하겠다고 하는 건 하나마나한 얘기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야당대표와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1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오랜 여야 대치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야당을 배려한 영수회담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다시 만나 막힘없는 대화를 통해 진정한 국민 대통합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