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로 (주)동양 본사 모습.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올 11월 결혼을 앞 둔 김 모(32) 씨는 지난 주말, 예정됐던 상견례를 취소했다. 대출까지 받으며 모아온 전세자금 1억 원을 날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며칠 동안 연락을 끊기도 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여자친구에게 이해를 구했지만 예정대로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지난 8월 동양증권 CMA에 맡겨놨던 돈 가운데 일부를 인출할 생각으로 동양증권을 찾았다.
돈을 맡겨놓으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적금과 비슷한 상품이 있다는 동양증권 직원의 말에 전세자금 1억 원을 직원이 제안한 상품에 투자했다.
1달 반 뒤, 동양사태가 난 뒤 알고 보니 김 씨가 구입한 상품은 동양의 회사채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 터지고 나서 제가 갖고 있는 게 뭐냐고 물으니 회사채라고 하더라구요. 회사채가 뭔지 전 이번에 처음 들었어요”라며 “오늘이 실은..저기 상견례 날이에요. 지금 다 취소하고 결혼도 다음달에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도대체 누구를 탓 해야 하는 건지...”
◈ 우리나라에 없는 '투자자 보호제도' 논의해야 할 때 ‘안전하다’는 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자들이 상품에 대한 지식도 없이 투자를 했다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증권사 직원들이 투자 상품의 종류나 위험성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불완전 판매’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정무위 강기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동양 계열사에 투자한 개인피해자 가운데 고령층인 70대 이상의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고연령대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금융투자사들의 불완전 판매 덫에 걸려든 투자자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현구 국장은 “회사채나 CP(기업어음) 같은 경우 금융감독원의 규제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만 맡겨놔서는 안된다”라며 “투자로 인한 손실은 투자자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지만 불완전 판매로 인한 손실을 보호할 장치 마련이 정부, 국회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 투자자들만 '홀라당'...금융투자사에 배상책임 물리는 기금 마련 논의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투자회사가 파산할 때 관련 투자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거의 없다. 최근 동양 사태가 터지면서 투자자 보호제도의 하나로 투자자보호기금제도가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논의 되고 있다.
5000만 원 이하의 예금에 대해서는 보호해주는 예금보험제도가 금융기관에 대한 대량인출사태를 막고 예금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보호할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금융투자회사가 상품 판매 및 운용상의 잘못이나 부적절한 경영행태로 인한 손실이 발행할 경우 투자금의 일부를 보상하는 것이다.
투자 손실을 본 투자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 판매, 금융사의 부실 운용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투자자에 한해서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외국에서는 이미 증권투자자보호공사, 증권사 보호기구 등이 설치 돼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