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플랜에 숨은 후계구도 밑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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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계열사 구조조정 진짜 이유

삼성그룹의 계열사간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제일모직은 삼성에버랜드에 패션사업을 넘기고, 삼성SDS는 삼성SNS와 힘을 합친다. 삼성물산ㆍ삼성엔지니어링 등 그룹 건설부문의 합병설도 끊이지 않는다. 겉으론 미래를 위한 준비로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후계구도 밑그림 그리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대부분 사라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0년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며 던진 말이다. 그로부터 3년 7개월이 흐른 올 10월 삼성그룹 안팎에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핵심은 계열사 사업의 구조조정이다. 유사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계열사를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우선 패션사업에 손을 댔다. 9월 23일 제일모직은 패션사업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금액은 1조5000억원, 올 12월 1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접고, 소재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자재료ㆍ케미칼 등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한다는 것이다. 이번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은 소재 부문에 투자할 방침이다.

 

사실 제일모직은 1990년대부터 케미칼ㆍ소재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1954년 직물사업을 시작한 제일모직은 1990년대 화학사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부터는 전자재료 부문을 핵심 사업으로 육성했다. 최근에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사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OLED 소재업체인 독일 '노바엘이디'를 인수했다. 반면 패션 부문은 꾸준히 줄여나갔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매출 현황을 보면 케미칼 사업이 전체 매출의 50%가량이고, 전자재료는 23%에 달했다. 패션ㆍ기타 부문은 27%에 불과했다.

하준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제일모직의 패션 부문 양도는 악재보다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준두 연구원은 "(패션 부문 양도로) 삼성그룹 내 '전자소재 전문업체'라는 확실한 정체성이 생긴 덕분에 집중적인 투자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OLED TV사업이 본격화되는 2014년이 그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재편의 핵심은 삼성에버랜드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넘겨받은 에버랜드 역시 새로운 성장을 준비한다. 에버랜드는 외식사업인 'FC(FOOD Culture)', 건축ㆍ토목ㆍ조경ㆍ부동산 서비스 등과 관련된 'E&A(Engineering & Asset)사업', 테마파크ㆍ골프장을 운영하는 레저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들만으로는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건희 회장 역시 변하지 않으면 10년 내 삼성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추가해 의식주를 포괄하는 종합문화회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패션ㆍ외식ㆍ레저 등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문화ㆍ서비스사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건축ㆍ조경 부문을 하나로 묶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얘기다. 특히 제일모직의 2012년 패션 부문 매출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에버랜드의 E&A사업(1조3000억원), FC사업(1조2000억원), 레저사업(3500억원)보다 규모가 커 에버랜드의 최대 사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성은 '대주주→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5.1%)이다. 이 회장의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도 에버랜드 지분 8.3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에버랜드의 움직임을 삼성의 후계구도와 연결하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성격의 에버랜드를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공동지배하고, 계열사는 각자 책임경영을 하는 식으로 후계구도가 짜일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방식으로 후계구도가 정리되면 지배구조가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업부별 정리폭이 크지 않아 안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삼성그룹의 핵심사업인 전자ㆍ금융 부문은 이재용 부회장이 맡고, 호텔ㆍ서비스와 중화학은 이부진 사장, 패션ㆍ광고는 이서현 부사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은 정보통신기술(ICT 사업) 조정에도 나섰다. 정보통신망 관리 회사인 삼성SDS는 9월 27일 삼성SNS를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삼성SNS는 1993년 설립된 통신망구축ㆍ홈네트워크 전문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5124억원이다. 삼성SDS는 현재 스마트타운ㆍ스마트매뉴팩처링ㆍ스마트 컨버전스ㆍ물류IT서비스를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6조1058억원, 영업이익 5580억원을 기록했다.

 

고순동 삼성SDS 사장은 "두 회사의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종합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회사로 발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이번 흡수합병이 중국ㆍ중동지역에서 IT솔루션을 구축하는 스마트타운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삼성SNS의 롱텀에벌루션(LTE) 등 무선통신망 구축사업을 접목해 세계적인 통신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IT솔루션 사업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 안팎에선 건설 계열사의 합병 얘기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최근 두달 동안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을 0.6%에서 1.82%로 높였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협업체제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건설부문 합병설

하지만 삼성물산의 움직임은 건설부문의 합병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실 업계에서 삼성물산의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에버랜드 건설부문의 합병 가능성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물산ㆍ삼성엔지니어링ㆍ삼성에버랜드ㆍ삼성중공업 등 그룹 건설사가 4개에 달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사업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승민 NH농협증권 연구원은 "국내건설사의 해외성장이 꺾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계열 건설사의 영역이 겹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하다"며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인수는 삼성의 건설그룹체제 또는 합병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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