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보다는 대화 먼저" 밀양 송전탑 시국선언 발표(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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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등 정부 보고서에 '송전탑 인근 주민 암 유발' 통계도 있어"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에 대해 각계 시민사회단체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이전에 주민들과 대화부터 해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밀양송전탑 서울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밀양 주민들을 이기주의로 호도하지 말라"며 정부와 언론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밀양 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데, 한국전력공사 및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이들과 대화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

대책회의는 "밀양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이라도 대화를 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제 신부는 "한전은 지난 8년간 주민들과 성의있게 대화한 적이 없다"며 "오랜 기간 주민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는데도 송전탑 건설만을 고수한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지영선 대표 역시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한전 측의 호소도 거짓말"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밀양 송전탑으로 전기를 실어 보낼 신고리원전 3호기 가동도 불확실한 상황인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주민들과의 논의를 회피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로 올라와 7일째 단식 농성 중인 밀양 주민 김정회 씨도 공사 자체의 당위성보다 공사 진행 과정의 불통(不通)이 문제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한전과 정부에는 전문가가 많을 텐데 왜 시골에서 농사만 지어온 우리조차 설득을 못 하느냐"며 "할머니들을 설득하고 공사를 하기만 했어도 어르신들이 새벽에 앞도 안 보이는 산길을 오를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대화 없는 현 상황을 비판했다.

대책회의는 밀양 현장의 대치가 길어짐에 따라 주민들의 안전에도 심각한 위험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식료품이나 고령자들이 복용해야 할 고혈압 및 당뇨약 등을 농성장에 들여보내는 것도 경찰이 차단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한전과 시청 직원 수백 명에 경찰 3000여 명과 싸우면서 이미 30명이 넘는 고령자들이 실신하고 탈진했다"며 공권력의 탄압을 중지하라고 호소했다.

'외부세력' 논란에 대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밀양 현장에 동참하는 이들을 '외부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주민 김 씨는 "단식 시위를 하는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이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말하던데, 과연 누가 외부세력이냐"면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밀양을 찾기까지 무려 8년 여를 "사람대접 못 받아 왔다"는 것.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밀양에 외부세력이 개입하고 있고 밀양 주민들이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고민 중이고, 편향된 오보에 법적으로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의 기자회견도 열렸다.

센터는 기자회견에서 "송전탑 건설로 인한 전자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국제사회 등의 연구 결과가 있다"며 "분명히 위험한 상황인데도 괜찮다고 얼버무리는 정부 등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예용 소장은 "고압송전선로 전자파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2002년 세계보건기구 공식 발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한전은 지난 2010년 직접 '전국 고압송전선로 인근 전자파 노출조사'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 바가 있는데, 이 자료를 요청하기 전까지 공개조차 안 해 왔다"고 꼬집었다.

한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전국 36개소의 765kV 송전선로 주변 지역 전자파를 실측한 결과, 전자파는 최대 14mG(밀리가우스)에서 34mG(밀리가우스)를 웃돌았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암가능성으로 분류한 전자파 노출농도인 3~4mG(밀리가우스)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또 정부에서 조사한 '전국 고압송전선로 주변 지역주민 암관련 건강영향조사' 보고서에도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 67곳과 그렇지 않은 대조지역 사이 암 발병 상대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10곳 남짓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암 발병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통계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라며 "추가적인 분석조차 거치지 않고 묻어두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안종주 위해소통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의 전자파 법적 노출기준이 833mG(밀리가우스)"라며 "유럽 선진국들이 규정하는 3~4mG(밀리가우스)와 많게는 400배 가까이 차이 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밀양 주민들이 송전선로 지중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서울의 경우 고압 송전선로 지중화 비율이 88%에 달하는 반면 경남은 3%에 못미친다"며 "건강 불평등, 에너지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농촌을 소외시키는 상황이 어떻게 지역 이기주의냐"고 반문했다.

또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시위가 벌어진 것도 사회적 위험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며 "밀양 송전탑도 오래 전부터 문제가 불거졌지만,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소통에는 상당히 소홀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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