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0일 2차 TV토론회 당시 모습. 자료사진
정부가 대상과 금액을 대폭 축소한 내용의 기초연금안을 26일 발표한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대선공약)에서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10만~20만원 차등지급'(정부안)으로 바뀐 것은 국가 재정에 무리가 생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9개월 전인 대선 때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발표할 때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검토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은 아예 뺐다"며 공약 이행을 자신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10일 2차 TV토론회 때 복지공약 재원 대책에 대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추궁하면서 한 말이다. 이 토론회에서는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확대해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드릴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도 전국민에게 생중계됐다.
박 대통령 발언대로라면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은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공약이었다는 얘기지만, 이번 공약 축소에 따라 TV토론회를 통한 대국민 선언은 '과장 광고'가 됐다.
◈재정불안 예상 못했다면 무능고작 9개월 만에 이처럼 공약이 수정될 것을 예상 못했다면 박근혜 대선캠프는 무능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재정 불안은 대선 전부터 우려돼왔던 사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와 세계 경제의 동반 부진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돼 국세가 2조5000억원 덜 걷혔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IMF와 한국은행 등에서도 한국 경제성장 전망을 2%대로 하향 조정하는 등 경제 여건이 불리해 세수확보에도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로 지난 5월 17조3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됐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캠프는 '계산'마저 제대로 못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공약 발표 당시 새누리당은 기초연금 공약 이행에 4년간 14조6672억원이 소요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인수위 업무보고 때 한해 7조~9조원씩 더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뒤이어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은 모두 39조3610억원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초 14조6672억원은 수령액 20만원을 대상자 수에 곱한 뒤 기존에 투입된 예산을 빼는 방식으로 추산한 것으로 안다"며 "예산이란 게 세입추계나 세수추계에서도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수조원씩 차이가 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알고도 강행했다면 대국민 사기
사진=청와대 제공
반대로 재정 불안을 예상해놓고도 공약 추진을 강행했다면, 야당 주장대로 대국민 사기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고령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쳤을 게 뻔한 공약을, 선거 뒤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도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를 배제하는 식으로 축소된 바 있어, '박근혜 복지공약' 전반을 놓고 야당은 '먹튀 공약'이라고 폄훼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 3월 6일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관련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선 기간 경로당을 방문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매월 어르신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인상해 드리겠다. 그런데 한꺼번에는 안 되고 매년 1%씩 해서 5년 내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랬더니 어느 할머니가 '박근혜 후보는 당장 20만원씩 다 준다고 하던데'라고 얘기해 아무 말도 못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이어 "60대 이상 노인층의 70% 이상의 지지를 받아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약속 이행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대응 논리는 "공약 후퇴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국가 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과 "당초 공약의 취지가 오해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65세 이상 모두에게 20만원씩 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수위 때부터 말이 많았다"며 "공약 후퇴라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지만, 국가 재정형편상 무조건적으로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도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진영 복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 "공약집을 보면 '모든 어르신이 그냥 다 받는구나'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같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처음 기초연금 (공약)을 만들 때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 분은 20만원을 다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정도의 얘기는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때는 공약을 다 얘기하는데 이게 길게 설명할 수 없고 단명하게 나가는 캠페인이다. 캠페인, 선거운동과 정책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 장관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