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무력화시킨 NL '군자산 약속'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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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자주적 민주정부" 결의…지난해 야권연대로 실현될 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참석한 이석기 의원이 지지자들의 인사에 화답하고 있다.(황진환 기자/자료사진)

 

“3년 내에 광범위한 대중 조직화를 통해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겠다.”

지난 2001년 9월 22과 23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군자산 보람원연수원에서 ‘2001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가 이틀간 열렸다.

1980년대 이후 민족해방(NL) 계열의 유일한 전국 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주도한 당시 모임에는 전교조,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의 NL 계열 인사 700여 명이 모였다.

10년도 더 지난 이 모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들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 경기동부연합 '정당운동 결의' 3년 만에 민노당 장악

2001년 당시 NL 계열들은 모임이 열린 곳의 지명을 딴 ‘군자산 약속’, 또는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으로 불리는 선언을 통해 합법 정당운동을 결의했다.

한총련 등을 내세워 거리투쟁에 몰두하던 NL 계열이 기존 노선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정당화에 나선 민중민주(PD) 계열의 뒤를 좇는 순간이었다.

NL 계열은 “6.15 공동선언 이후 가까운 시일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이 실현되고 향후 10년을 전후해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열렸다”며 PD 계열이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줄줄이 입당했다.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이자 NL 계열의 핵심으로 꼽히는 경기동부연합은 당시 대학생 당원을 대거 조직하면서 울산연합·인천연합 등을 따돌리고 민노당 안에서도 점차 거대 세력으로 떠올랐다.

2004년 17대 총선은 NL과 PD의 운명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민노당은 10석을 확보했지만, 정작 '본류'였던 PD 계열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총선 직후 치러진 당 지도부 선거에서 NL 계열은 당권을 장악했다.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등으로 지역위원회(옛 지구당)를 하나씩 ‘점령’한 덕분이었다.

◈ NL '패권-종북' 논란…일심회 사건으로 결국 분당

경기동부연합은 특히 2006년 1월 광주·전남연합과 연대해 ‘범경기동부연합’을 조직하면서 민노당의 주류가 됐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었던 민노당에 ‘패권’과 ‘종북(從北)’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을 때 민노당은 "미국과 북한 모두 잘못"이라는 주장을 폈다. 2005년 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을 때도 북한 비판 결의안은 부결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2006년 10월에도 민노당은 “북핵은 자위적 측면이 있다”고 변호했다. 당시 PD 계열은 분당을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채 10월이 가기도 전에 분당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일심회 사건’이 터졌다.

일심회 사건은 장민호 등이 각종 국내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사건으로, 장 씨는 “민노당 정책위를 장악하고 위원장으로 경기동부연합 이용대를 내세우라”는 지령을 받기도 했다.

최기영 사무부총장은 주요 현안에 대한 당내 계파별 성향과 동향 등을 분석한 자료를 북한 공작원에게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1년 뒤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71만 2121표를 얻는 데 그쳤다. 95만 7148표를 득표한 16대 대선보다 후퇴한 결과였다.

NL 지도부에 대한 비난과 쇄신 요구가 거세졌다. PD 진영은 "더 이상은 ‘종북세력’과 함께 할 수 없다"며 줄줄이 당을 떠났다.

분당의 기로에서 심상정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심상정 비대위는 종북 논란의 핵심인 일심회 관련자를 제명하고자 했다.

2008년 2월 3일 임시 당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재적 862명 중 553명이 비대위의 혁신안을 부결시키고, 일심회 제명 처분안을 폐기했다. 결국 당은 쪼개졌다.

◈ 이석기의 등장…당권파 논란 속 ‘군자산 약속’ 실현될 뻔

NL·PD 계열은 2012년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3년9개월 만에 통합진보당이라는 한 지붕 아래 동거를 시작했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도 들어오면서 외연은 더 넓어졌다. 끝까지 통합을 거부한 일부 PD 세력은 지금의 노동당인 진보신당에 남았다.

진보당은 19대 총선에서 13석을 확보하며 부활했다. 경기동부연합의 숨은 실세였던 이석기 의원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당원들에게도 낯선 이름이었던 이 의원은 NL 계열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서 27.5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부정경선 의혹과 당권파 논란 속에 NL·PD 계열은 또 갈라섰지만, 진보당은 안팎의 거센 비판에도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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