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나와도 대기업 잘 가던데" 부모님 말에 불효자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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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용카스트 ②] 고용카스트가 빚어낸 두 청년 이야기

 

2013년 봄. 청년 취업자들의 마음은 혹독한 겨울이다. 지난 3월 청년(15~29) 고용률은 38.7%를 기록했다. 지난 30년 동안 최악의 고용률이다. IMF외환위기 때도 4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던 청년 고용률이었다.

20대 인구의 39%는 아예 ''취준생(취업준비생)''이나 ''청년 백수''라는 이름으로 구직전선에서 빠져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빈 일자리는 올초부터 계속 늘어나 3월에는 18만5천개의 빈 일자리가 생겨났다.

빈 일자리는 늘어나는데 IMF때 보다 더 심각한 청년들의 고용 한파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CBS는 심각한 청년 취업난의 배후에는 고용이 신분이 되는 사회, 즉 ''고용 카스트''가 있다고 봤다.

오늘은 지방대에 들어갔지만 결국 대기업 정규직이 된 한 청년과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도 결국 청년 백수가 된 또 다른 청년의 상반된 인생경로를 통해 고용카스트의 실태를 들여다 본다.

◈ "이대론 미래없다"…지방대 생의 고군분투記

''''미래가 없다.'''' 4년제 모 지방대학 출신인 김모(32)씨는 10년 전의 일을 그렇게 회고했다. 그는 군을 제대한 뒤 다시 수능 준비를 시작했다.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지방대에 계속 다니다가는 대기업에 취업할 확률은 극히 낮아 보였고 어두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김 씨는 재수 끝에 서울의 중위권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인(in)서울 하면 어느정도 밝은 미래가 보일 것 같았지만 앞이 캄캄한 건 마찬가지였다. 졸업 즈음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동기들은 줄줄이 취업에 낙방했다. 주변 친구들이 대안을 찾기 위해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김 씨는 서울 상위권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대학원 졸업 후 이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전투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김 씨는 살벌한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수 십 군데 원서를 썼지만 매번 ''불합격''의 쓴 잔을 마셔야했다.

김 씨는 "취업을 준비하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수능을 보고 대학원에 간 시간이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어요. 열심히 하면 됐으니까요. 하지만 취업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회사에서 저를 선택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다시 전투 준비를 해야 했다. 김 씨는 취업 과정을 다시 점검하고 기업별 취업 전략을 세웠다. 대학원 졸업 후 1년. 약 80번의 원서를 써 낸 끝에 김 씨는 굴지의 모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은 탓에 남들보다 2배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김 씨에게 후회는 없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하잖아요. 회사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요.''''

김 씨가 큰 시간과 비용을 감수하고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김 씨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 공부도 곧잘했는데…결국은 청년백수

 

학창시절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던 윤 모(32)씨는 어릴 때부터 ''공부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 씨와 달리 윤 씨는 서울 4년제 중상위권 대학 법대에 진학했다. 출발이 좋았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사법 시험 준비를 했다. 모의 고사를 보면 1등도 하고 성적이 꽤 좋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탓에 고시원 총무, 학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사법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던 윤 씨는 결국 30살이 될 즈음 고시를 접었다. 사시를 준비하느라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지 못한 그는 그 때부터 독학으로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자격증 공부도 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취업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한참 앞서 나간 취업준비생들을 따라잡기는 버거웠다. 당장 생활비가 급했던 윤 씨는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단체에서 기간제로 일했다. 그러면서 계속 원서를 썼다.

대기업, 공기업 등에도 원서를 썼지만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돈이 조금 모이고 경력이 쌓이면 도전해보기로 하고 일단 눈을 낮췄다. 중소기업도 가리지 않았다.

얼마안가 윤 씨는 조그만 잡지사에 편집부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돈이 급해서 들어갔지만 잡지사는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임금을 몇 달째 체불했고 결국 윤 씨는 그 일을 그만뒀다.

이후에도 수 십 차례 원서를 썼지만 윤 씨에게 주어진 일은 매번 기간제, 계약직 일뿐이었다. 첫 직장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구직을 단념했다. 지금은 쉬고 있다.

◈ "전문대만 나와도 대기업 가던데"…하지만 사다리는 없었다

 

''''아는 사람 아들은 전문대만 나오고도 대기업에 취업하던데…'''' 이렇게 말하는 부모님을 뵐 낯이 없다. 너무나 죄송하니까. 윤 씨는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게 낫지 않을까''''라고 자책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로를 짚어보던 윤 씨가 묻는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매 순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고 실수나 잘못도 없었는데…''''

그에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첫출발은 비정규직이라서 조금 고생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안정된 일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는 청년의 믿음을 우리사회는 외면했다.

노동연구원 장지연 선임연구위원이 2010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용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주변부''''에서 대기업 정규직이 주축인 ''''중심부'''' 노동시장으로 이동한 비중은 고작 3%에 불과했다. 80%에 가까운 주변부 노동자들은 이직을 하더라도 주변부만 떠돌았다.

''''고용신분의 벽''''은 높았다, 그렇게 고용 카스트는 청년들을 옥죄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신분으로 시작하기 위한 청년들의 무한 경쟁도 그래서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에 ''고용 카스트''가 생겨난 원인은 무엇인가. 좋은 일자리로 오르는 사다리는 왜 없어졌을까. 그리고 해답은 있을까. [내일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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