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과 김자인은 올 3월 나란히 석사과정 2학기에 들어간다. 학교는 다르지만 전공은 스포츠심리학으로 같다. 교육행정을 전공하는 김주희는 박사과정 3학기를 맞는다.
이들 모두 선수로서 세계 정상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악조건 속에서 치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따낸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14일 호주로 동계 전지훈련을 떠났다.
김자인은 여자 스포츠클라이밍 리드 세계랭킹 1위로 2012시즌을 마감한 후 휴식 중이고, 김주희는 작년 12월 15일 프로이나파 세컨른구릉(23, 태국)을 꺾고 여자 프로권투 최초로 8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오른 뒤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국내외훈련과 각종 대회 일정만으로도 빠듯해 보이는 세 선수가 두 가지를 병행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은퇴 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목소리다.
"2011년에 교생실습을 하면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구체화했어요. 대학원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에요."(박태환)
"선수생활을 오래 하면서 심리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면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김자인)
"지금은 세계챔피언이지만 ''권투선수''가 평생 직업이 될 수 없고, 은퇴했을 때 진로를 바로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김주희)
박태환은 작년 11월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제2의 도전을 선언했다. ''''학업과 수영을 동시에 잘 해내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당시 그는 석사과정 1학기에 재학 중이었지만 학기 중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10월 1~31일)을 받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수업을 빠져야 했다.
대학원 첫 학기 때 수업에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박태환은 ''''학업과 수영을 병행하면서 이전처럼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면서도 자신이 새로 가려는 ''''공부하는 선수''''의 길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두 가지를 동시해 잘 해내기란 녹록지 않다. 김주희는 ''''시합과 학교 시험이 겹치면 혼란스럽다''''고 했다. 바쁜 대회 일정 탓에 1학기를 마친 후 한 학기 휴학을 했던 김자인은 ''''대학원 공부가 익숙지 않아서인지 첫 학기에는 재미보다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자인은 현역선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고 웃는다.
''''스포츠심리학에서 말하는 경쟁불안, 동기, 몰입상황을 제가 경기 중 겪는 상황과 비교하다보면 흥미로워요. 또 운동하면서 ''''팔(전완근)에 펌핑이 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는데 우리 몸의 젖산시스템이 원인이라는 것을 스포츠생리학 수업을 통해 알게 됐죠.''''
배움을 통해 외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는 법도 알게 됐다. 박태환은 이미 수영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 때문에 런던 올림픽 이후 그의 은퇴를 점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현역선수 연장을 선언했다. ''공부하는 선수''라는 새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는 험난한 도전이 되겠지만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오롯하다.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 롤모델이 되고픈 바람도 엿보인다. 그래서 박태환의 도전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열정 못잖게 값져 보인다.
김자인은 공부하면서 국제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성취감을 느꼈다. 박사 2년차 답게 "공부를 권투 트레이닝 과정의 일부로 여긴다"는 김주희는 바쁘게 생활하면서 오히려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해외논문의 원문을 읽다보면 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몰랐던 부분을 배워가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있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김자인)
''''학교 과제, 트레이닝, 집안일, 강연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나고 보면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무사히 끝냈더라고요. 권투가 비인기종목인데 이렇게 시합을 할 수 있고,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오히려 감사해요.''''(김주희)
선수생활을 마친 후 교수를 꿈꾸는 박태환과 김주희, 그리고 지도자가 되고 싶은 김자인은 각자가 그리는 미래상도 뚜렷하다.
''''교육자의 말 한 마디에 학생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요. 교수가 되면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학생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박태환)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학업과 운동을 모두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공부하는 습관만큼은 가질 수 있게 할 생각이고요. 저처럼 스포츠클라이밍에 애정을 갖고 즐겁게 운동하도록 이끌어주고 싶어요.''''(김자인)
''''학생 개개인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같은 교수가 싶어요.''''(김주희)
학생선수 때부터 운동에만 올인하는 국내 스포츠 풍토에서 ''''공부하는 선수''''는 여전히 생소한 게 사실이지만 학업과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주저하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처음 (공부를)시작할 때는 힘들겠지만 적응되면 괜찮을 거야. 물론 시스템적인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해.''''(김자인)
''''운동에만 치중하다 보면 선수생활을 마치고 나서 제2의 인생을 꾸려야 할 때 심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어. 힘들겠지만 공부도 트레이닝 하듯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나가면 은퇴 후 진로를 정할 때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거야. 그러니까 ''''닥도''''(닥치고 도전) 해봐.''''(김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