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영동1985'' 박원상 "마흔셋 지금 흔적 영원히 못지울것"

"시대의 아픔 1020도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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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은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발가벗겨진 몸은 마치 도살장의 돼지처럼 다뤄졌다. 실제로 5공화국 시절, 끔찍한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은 영화 마지막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인간도살장에 끌려온 기분이었다" "잡혀서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치를 떨었다.

''남영동1985''에서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하는 박원상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연기라할지라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자체 제작한 고문대 칠성판에 올라간 게 후회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박원상은 어릴 적 사고로 지난 30년간 깊은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박원상은 최근 노컷뉴스와 만나 "처음 칠성판에 올라가 물고문 장면을 찍는데 바로 엔지가 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박당하고 눈 가리고 수건 덮고 물이 쏟아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됐다. 물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해와 엄청 당황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이걸 못하면 영화자체가 완성될 수 없기에 제가 하루빨리 물에 대한 공포를 벗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실제 남영동에서 자행된 고문은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인데, 그나마 영화 작업 속에서 고문이란 하면 할수록 적응이 됐다"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적응이란 과정을 들어보면 참 눈물겹다. 박원상은 "가해자 역할의 배우는 최대한 진짜처럼 가해하고, 저는 최대한 버티는 것을 기본으로 제가 한계치에 달하면 신호를 보내겠다고 서로 약속하고 촬영에 들어갔다"며 "하지만 다들 연기에 몰입하다보니 제 신호를 못 알아챘다. 그때는 진짜 아찔했다"고 돌이켰다.

그래서 강구해낸 방법이 연출부 스크립터에게 초시계를 쥐어준 것이다. "최대한 버틸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테스트한 뒤 무조건 30초 뒤면 촬영을 중단하는 식으로 찍었는데, 나중에는 그 시간이 1분이 넘어갔다. 고춧가루 탄 물 고문신은 1분 이상 버티게 된 이후에 찍었다"고 말했다.

정신적 고통은 없었을까? 박원상은 "촬영 초반에는 그렇게 존경하는 이경영 선배도 얼굴을 보고 싶지 않더라"며 "나는 괴로운데 자기들끼리 핸드폰 게임하다가 졸고 낄낄거리니까 너무 밉더라. 촬영이 끝나면 혼자서 숙소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중에 조금씩 상황에 적응하면서 동료들과 어울렸고 찍고 나면 바로바로 털어버렸다"고 회고했다.

"김근태 의원의 수기 읽어보면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가해한 고문자보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목소리의 DJ였다고 한다. 정신과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져나가고 있는데 동시간대 어디선가는 커피향이니 가을 정취를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저 역시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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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의원, 나와 다른 삶을 산 그분 연기 부담 컸다"

성기 노출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박원상은 "고문의 단면을 부감 샷으로 표현했는데, 그때의 몸은 그냥 덩어리다"며 "고문의 시작은 옷을 벗기는 거라서 그런 노출은 당연했고 얼마나 몸을 왜소하게 보일지가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근데 체중감량에도 거울 속 내 몸이 왠지 김근태 의원의 몸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제가 종아리가 굵다. 그러던 어느 날 (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김의원이 축구광이라며 사람들 생각과 달리 반전몸매의 소유자라고 해주셔서 그때부터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옷을 확확 벗었다"며 웃었다.

고문과정을 재현하는 과정은 이처럼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히려 그보다는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아낌없이 던진, 김근태 의원을 연기한다는 그 자체가 더 부담됐다. 정지영 감독과 선배 이경영에게 차라리 고문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하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정도.

박원상은 "초고는 지금의 김종태가 아닌 김근태 실명으로 돼있었다"며 "내가 이분을 어떻게 감당하지, 88학번 동기들이 수업 접고 집회 참석할 때 난 대학4년 동안 단 한 번도 참석안하고 대학극장서 보냈는데, 그분과 너무나 다른 내 삶이 마음에 걸렸다"며 당시의 부담감을 털어놨다.

"그래서 감독님께 모면의 구실을 찾아 제가 차라리 이두한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경영 선배가 언제 또 이런 역할 할 수 있을 거 같으냐며 쓸데없는 소리말라며 호통을 치셨다. 뭐가 됐건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영화가 완성된 지금 박원상은 이번 작품이 더없이 특별하다. 그는 "먼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마흔 세살에 만났던 이 작품이 분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라며 "그런 작품이 생긴 게 기쁘다"고 감사했다.

그러면서 "잊으며 안 되는 기억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라며 "인생선배로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는 게 맞지 않나. 15세 관람가라서 많이 고맙다"며 특히 10~20대 관객들의 많은 관람을 바랐다.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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