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양극화와 불경기의 여파로 대도시 영세상인들은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맞고 있다. 짧은 밑천 때문에 SSM처럼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를 할 능력도 좋은 제품을 가져다 놓을 제품조달능력도 그렇다고 뛰어난 마케팅 능력도 없는 것이 골목상인들의 처지이다.
경쟁력이 있을리 없다. 겨우 현상유지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힘들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자금력과 광범위한 영업망, 정보력 등을 갖춘 유통 대기업이다.
롯데나 홈플러스 등이 운영중인 슈퍼마켓이 골목으로 진출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화려한 쇼윈도우에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 시원하고 쾌적한 쇼핑환경, 싸고 다양한 제품들의 유혹에 소비자들이 썰물 빠지듯 대형슈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뺏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 가속화하면서 이미 웬만한 골목상권은 대기업이 장악한 지 오래다. 여기에다 영세상인과 중소상인단체가 두눈 부릅뜨고 대기업의 추가 출점을 저지하고 있어 더 이상 진출할 골목상권도 없다.
하지만 자본과 대기업의 탐욕에는 끝이 없다. 대중소기업상생법에 걸려 번번이 추가 출점이 좌절되자 대기업들은 직영점 형태의 출점을 포기하고 가맹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해 세를 확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그룹이다.
롯데는 골목상권 출점이 어려워지자 일찌감치 가맹점 방식의 상권 확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2009년 5월 롯데슈퍼 가맹점을 받기 시작해 지금까지 61개의 가맹점을 오픈했다. 전체 롯데슈퍼의 14%가 넘는 수치다.
가맹점은 가맹점주가 가게지분을 좀 더 많이 갖고 있을 뿐 슈퍼 간판이나 매장 내외부 디자인, 상품 마케팅과 조달 방식이 롯데슈퍼와 똑같다. 롯데가 가맹점을 열어 얻게되는 겉으로 드러난 이익은 매출액의 3%를 수수료 가져가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익은 엄청나다.
껌에서부터 과자와 음료, 주류 등 만들지 않는 것이 없는 롯데의 상품들이 슈퍼를 통해 소비자에게 팔려 나간다는 점에서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직영이나 가맹이 차이가 없다. 유통채널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자사 제품이 더 많이 팔리기 때문에 다다익선이다.
롯데그룹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비난과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점포를 늘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소기업상생법에 따르면 가맹 슈퍼마켓의 경우 대기업의 소유지분이 51%를 초과하지 않으면 대기업 출점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사업조정신청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내 어디서든 슈퍼마켓 오픈이 가능하다.
실제로 구로구 천왕동 에이스프라자에 롯데슈퍼 가맹점이 문을 열자 지역 상인단체들이 사업조정신청을 냈지만 서울시에서는 사업조정신청 대상이 아니라며 반려해 해당 슈퍼마켓은 이달초 정식 오픈했다. 이 과정에서 상인단체가 슈퍼를 찾아가 항의하다 폭력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상권 경쟁에서 뒤질세라 유통대기업들이 이같은 법망의 허점을 파고 들며 점포를 하나씩 늘려 가는 사이 골목상권은 다 죽는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상인단체나 중소기업청 등에서는 가맹점 형태의 골목상권 진출이 어렵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롯데슈퍼는 "가맹점주들도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골목상권 침해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70~100평 규모의 슈퍼마켓을 1개 여는데 드는 비용이 10억원을 넘어 웬만한 재력으로는 슈퍼마켓 사업에 손도 대기 어렵다. 제도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