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납세자연맹이 유류세 인하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정치권과소비자를 중심으로 탄력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마 정부는 기름 값 인상이 국제원유가 인상에 따른 것이므로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130달러가 넘지 않는 이상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Why뉴스에서는 ''기름 값은 치솟는데 왜 정부는 무대책인가?''라는 주제로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기름 값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 기름 값이 내릴 기미는 없는 거냐?
= 국제유가가 내리지 않는 한 기름 값이 내릴 여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8일자 휘발유 가격은 서울평균이 2094원을 넘어섰고 전국평균은 2021원을 넘어섰다. 1월 6일부터 63일째 매일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올 들어 지난 1월 3일 배럴당 105.91달러에서 출발했는데 꾸준히 상승해 2월 23일 120달러를 넘어선 뒤 120달러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기름 값이 내리려면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동산 원유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의 국제정세나 경제상황으로 봐서 국제유가가 떨어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150달러에서 심할 경우 2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기름 값이 내려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제유가가 내려가지 않으면 유류세를 내려서라도 기름 값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
= 물론 그렇게 강제적인 방법으로 유류세를 인하해서 기름 값을 내릴 수 있지만 정부는 ''유류세 인하는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 이하인 상황에서는 세제(유류세) 인하는 없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박 장관은 다만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을 경우 컨티전시플랜(비상경제대책)에 따라 어려운 계층부터 선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재부 백운찬 세제실장도 "두바이유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는 기간이 5일 이상 이어지면 유류세 인하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일률적인 인하는 없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생계형 차량사용자 예를 들어 개인사업용 트럭이나 퀵서비스 등 저소득 서민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지금은 그런 것 자체도 검토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왜 유류세 인하를 거부하는 거냐?
= 백운찬 세제실장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기름 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름소비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2008년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140달러까지 치솟았을 당시 유류세 10%와 석유수입관세 1%를 내렸는데 리터당 82원을 인하한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두바이유가 배럴당 140달러로 치솟으면서 유류세 인하효과는 온데간데 없이 세수만 감소했다. 지난해에도 유류세 인하 압박이 거세게 일었지만 정부는 정유사들에게 리터당 100원 인하로 대신했다. 그러나 인하효과는 기름 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한 달도 가지 못했다.
따라서 정부가 세수감세를 감내하면서 기름 값을 내리는 것이 부담이 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름소비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내릴 경우 기름 소비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름 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중소형 차량보다는 대형차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유류세 인하가 대형차를 이용하는 부유층이 상대적으로 세금인하 효과를더 많이 누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한 탄력세율를 낮추는 방법이 있을 것 아니냐?
=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탄력세를 낮추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에서는 지난6일부터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1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가 이날 아침까지 7420명이 서명을 했다. 휘발유 1리터에 부과되는 세금은 교통세 529원(기존의 475원에 탄력세 54원을 더한 것), 주행세 137.54원(교통세 26%), 교육세 79.35원(교통세 15%)이고 부가가치세가 최종가격의 10%이며 원유수입가격의 3%가 관세이다.
이중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탄력세다.
정부는 2009년 5월 휘발유 1리터에 475원이던 교통세에 11.37%(54원)의 탄력세를 적용했다. 탄력세율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다른 세율과 달리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최대 30%까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탄력세를 적용하지 않거나 최대 30%까지 낮추면 휘발유 가격을 76원에서 277원까지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안정화됐을 때 탄력세율을 11.37% 적용해 세율을 올린만큼 국제유가 상승으로 유가가 치솟는 지금은 탄력세율을 법에 정해진 -30%까지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탄력세를 인하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수감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달에 소비되는 기름은 600만 배럴 안팎이다. 지난해 12월에는 621만 배럴1월에는 584만 배럴을 소비했다. 1월에 사용한 기름을 리터로 환산하면 9억2천7백만 리터에 이른다. 탄력세율을 조정해 리터에 100원을 인하하면 월 927억원, 연 1조 천억 원이 넘는세수가 감소하게 된다.
2008년 이후 매년 적자재정을 이어오고 있는 정부로서는 세수감소를 선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지난해 25조원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14조3000억원 적자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기름 값을 내리는 방법도 있을 것 아니냐?
= 그런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정유사는 적자를 언제나 적자를 보는 법이 없으므로 마진율을 낮춰서 기름 값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유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유소의 마진율은 2% 정도에 불과하다"며 "유가가 오를수록 재미를 보는 곳은 정유사"라며 "정유사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이익을 줄여 유가를 인하하는 방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지난해 별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다.
정부가 지난해 정유사들을 압박해서 리터에 100원을 인하했지만 효과는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정유사들은 기름 값 인하로 수천억 원의 적자를 봤다고 아우성이고 인하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자유 시장 경쟁체제에서 시장에 있는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건 위기상황이면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유사 전체의 영업이익이 7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익이 모두 시중에 판매되는 휘발유나 경유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 55%를 정도를 수출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휘발유나 경유는 20% 안팎이라며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은 수출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기름 값을 낮출 방법이 전혀 없다는 얘기냐?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내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원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인데 휘발유는 배럴당 132달러니까 마진은 12달러 정도다. 마진율이 10% 정도인데 수송비와 정제비 정유사와 주유소의 이윤 등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의 비중도 우리나라가 높은 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유류세 비중이 OECD국가 중 20위권 정도로 높지 않다"고말했다. 특히 우리보다 세금비중이 낮은 일본이 기름 값은 더 높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요구대로 탄력세율을 낮출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내릴 것이며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연말까지 탄력세율을 연말까지 낮춘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기름 값을 내릴 방법이 있다면 왜 정부가 그냥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알뜰주유소도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2곳의 알뜰주유소인 금천구 ''형제알뜰주유소''와 서초구 ''농협하나로주유소''의 판매가격이 인근의 다른 주유소보다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형제주유소는 리터당 2037원,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농협하나로주유소는 2048원을 기록했는데 주변 주유소의 가격이 알뜰주유소보다 많게는 40원 정도 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알뜰주유소가 없는 다른 지역도 알뜰주유소보다 더 싼 값에 휘발유를 팔고 있어 정부가 주장하는 주유소들의 기름 값 인상 저지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10곳에 미니 알뜰주유소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별 효과가 없는 대책을 검토하는 셈이다.
▶그러면 치솟는 기름 값에 대처할 대책은 뭐냐?
가장 확실한 대책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 대체하거나 세금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서 간접세 비중을 낮추고 직접세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면 유류세를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중동정세 안정으로 국제유가가 대폭 내리거나 원화강세로 환율이 내리거나 하는 외부적 요인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책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지난겨울 기름소비가 줄었고 국제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기름 값은 소폭이나마 내렸다고 한다.
문제는 소비를 줄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기름 값이 치솟는데도 기름소비가 줄지 않는 이유는 기름 값 인상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계층이거나 어쩔 수 없이 기름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생계형인 경우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대책이 없다''고 버틸 것이 아니라 생계형 이용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