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는 왜 공천도 안 준 박희태를 밀었나?

"박 의장 만한 사람 없다는 결론…공천 탈락에 대한 보상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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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검찰수사가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한 친이계를 정조준하면서 친이계가 정권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친이계는 총선 승리이후 MB정부 출범 초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견인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내사람''을 당 대표로 세워야 할 필요성 때문에 박 의장을 지원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박 의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더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지난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 위원장은 박 의장을 직접 만나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위원장이 믿었던 박 의장이 제의를 거절하자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못봤다는 얘기를 참석자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박근혜를 버리고 이명박을 택한 박 의장은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MB 대통령 만들기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8대 총선 공천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를 두고 한 친이계 의원은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이 친박계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친이계 대표로 박 의장을 탈락시킨 것으로 안다"고 회상했다.

이 의원은 "그런데 MB가 이 사실을 알고 이 총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며 "이 총장이 3년동안 팽당한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원(舊怨) 때문에 박 의장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출마결정을 머뭇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계은퇴가 불가피했던 박 의장은 결국 당 대표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당시 친이계 중에서도 이상득 의원 진영은 박 의장을, 이재오 의원 진영은 안상수 전 대표를 각각 내세우려다 추후 박 의장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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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이계 의원은 "당시 아무리 찾아봐도 박 의장 만한 사람이 없다는게 결론이었다"며 "공천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보상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몽준 전 대표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박 의장을 바싹 추격하자 위기감을 느낀 친이계가 조직관리 차원에서 돈봉투를 돌렸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당시 한 후보 캠프 관계자는 "판세가 심상치 않자 친이계가 세게 결집했다"며 "돈봉투 액수를 보니 회유차원이라기 보다는 조직결속을 위해 실비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친이계의 지원으로 당대표에 당선된 박 의장은 이듬해 당 대표를 사퇴하고 경남 양산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2010년 다시 친이계의 지지로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이렇게 정치인으로 입법부 수장의 위치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았던 박 의장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돈봉투 사건으로 24년간의 정치생활을 불명예로 마감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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