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안에 주가 5,000p" MB 발언 어디로 갔어?

[MB노믹스 4년 긴급점검 ①] ''7·4·7''의 미몽

이 대통령이 2008년 2월 당선자 시절에 찾았던 서울 봉천동 원당시장. 4년이 지나면서 상인들의 마음은 얼어붙었다.(장규석 기자/노컷뉴스)
추웠다. 좌판 위에 놓은 생선 상자는 낮에도 얼음이 잔뜩 끼었다. 찬바람이 시장골목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두터운 외투와 목도리 차림의 시장상인들은 자라목을 하고 얼굴을 목도리에 파묻었다. "요즘 장사가 어떠세요?" 마이크를 들이댔다. 손님인줄 알고 일어섰던 어물전 아저씨의 얼굴이 굳는다. "어렵죠. 경제가 안 좋으니까." 짤막한 한마디. 다시 움츠린 자세로 돌아간다. 말해 뭣하냐는 표정. "지금 바쁘니까…." 손님 아니면 빨리 나가라는 뜻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이른바 서민 주거지역으로 불리는 그 한복판에 원당시장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 2008년 2월 3일, 서민생활을 점검하겠다고 맨 처음 찾은 재래시장이다. 겨울이었지만 막 대통령으로 뽑힌 당선인을 맞이한 상인들의 마음만은 훈훈했다. 당선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만은 책임지고 살려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장 생선좌판 할머니는 ''이제 장사가 될 것 같다''며 당선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2011년 12월 21일 기자가 다시 찾은 원당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얼어붙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30대 새댁은 "물가가 겁나게 올라 해마다 달마다 손님들이 더 적게 사간다"고 했다. 30년 동안 채소 노점을 했다는 60대 할머니는 "대통령이 잘살게 해 준게 없다"고 딱 잘랐다. 바로 옆 반찬가게 아저씨도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고개를 저었다. 맞은편 떡 집 아주머니는 "시장에서 장사 잘 되면 간첩"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간 뒤 4번의 겨울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 MB, "7%이상 성장가능, 임기 말 주가 5,000포인트" 장담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경제공약으로 "대한민국 747"을 앞장세웠다. 해마다 7%씩 경제 성장해, 국민소득 4만 불을 이루고,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이렇게 저성장한 때가 없었다. 법질서만 확립돼도 GDP성장률이 1% 올라간다. (당시 성장률 전망치 5%에) 2% 정도 더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어쩌면 더 초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2007년 12월 방송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자신만만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7%는 불가능한 얘기라는 반박에는 "그건 경제학자들의 시각"이라고 일축했다. 유세장에서는 "일자리 300만 개를 만들겠다", "임기 첫 해에 주가가 3,000포인트까지 올라가고 임기 말에는 5,000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장담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경제학자들은 앞다퉈 ''7% 성장은 가능하다''고 말했고, 보수 언론은 확대 재생산 했다. 국민들은 믿었고, 이명박 후보는 당선됐다.

참여정부와 실용정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비교
◈ 취임 첫 해부터 어긋난 약속.. 참여정부보다 못한 성적표

이 대통령이 취임한 첫 해. 2008년 경제성장률은 2.2%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에서 1만9,231불로 곤두박질쳤다. 3,000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주식시장은 반토막 났다. 연초보다 40% 폭락한 1,124포인트로 마감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성장률이 0.2%로 무(無)성장에 가까웠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2010년에는 대기업 수출약진과 2009년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6.2%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것도 7% 성장 공약에는 못 미쳤다. 국민소득은 가까스로 2만 불을 다시 회복했다.

올해도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성장률이 3.8%에 그칠 것으로 잠정 집계됐고, 정부의 내년 경제 전망은 성장률 3.7%로 더욱 어둡다. 내년에는 수출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돼 4만 불은 커녕 가까스로 회복한 2만 불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힘겹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전망치대로 나온다고 가정하면 MB정부 5년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3.22%다. 취임 초 내세웠던 7%는 고사하고, 이 대통령이 ''무능한 정부''라고 비난했던 참여정부 5년(2003-2007)의 평균 경제성장률 4.3%보다 외려 1% 모자란다. 반대로 물가상승률은 MB정부 초부터 올해 말까지 평균 3.7%에 달했다. 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92%였다.

◈ "경제위기 속 선방" vs "MB정권은 불임정권"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예기치 못한 세계 경제위기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획재정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우리나라가 대외여건 악화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 OECD 주요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2008년과 2009년에도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또 ''OECD 34개 국가 중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간의 격차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5번째(-0.6)로 매우 양호''했다고 평가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선방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MB정부가 잘해서 거둔 성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학)는 25일, "중국의 호황기조 덕택에 한국경제는 순항할 수 있었다"며, "현 정부가 정책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조 교수는 또 "금융위기가 2년쯤 더 늦게 왔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히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 금융위기인데, MB정부의 당초 정책 기조대로 우리 경제를 세계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적극 편입시켰다면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논리다. 조 교수는 "이번 정권은 어떤 생산적인 정책도 수행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불임 정권''"이라고 혹평했다.

경희대 권영준 교수(국제경영학)는 "100미터를 12초에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8초로 기록을 앞당길 수 있겠냐"며, "당시 4.5% 수준의 잠재성장률에서 7%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현실을 모르고 하는 무식한 소리였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또 "만약 금융위기가 없었고 정부가 무리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했다면 엄청난 경제적 부작용이 나타났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8년 2월 3일, 봉천동 원당시장을 찾은 이명박 당선인은 "열심히 한 번 해보겠다. 서민경제가 잘 돼야 재래시장도 잘되고 그래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고 말했다. 4번의 겨울이 지난 2011년 겨울. 이명박 당선인에 기대어 울었던 생선가게 할머니의 좌판은 사라졌다. 아무도 할머니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마치 MB의 747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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