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 이른바 서민 주거지역으로 불리는 그 한복판에 원당시장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 2008년 2월 3일, 서민생활을 점검하겠다고 맨 처음 찾은 재래시장이다. 겨울이었지만 막 대통령으로 뽑힌 당선인을 맞이한 상인들의 마음만은 훈훈했다. 당선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만은 책임지고 살려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장 생선좌판 할머니는 ''이제 장사가 될 것 같다''며 당선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2011년 12월 21일 기자가 다시 찾은 원당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얼어붙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30대 새댁은 "물가가 겁나게 올라 해마다 달마다 손님들이 더 적게 사간다"고 했다. 30년 동안 채소 노점을 했다는 60대 할머니는 "대통령이 잘살게 해 준게 없다"고 딱 잘랐다. 바로 옆 반찬가게 아저씨도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고개를 저었다. 맞은편 떡 집 아주머니는 "시장에서 장사 잘 되면 간첩"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간 뒤 4번의 겨울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 MB, "7%이상 성장가능, 임기 말 주가 5,000포인트" 장담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경제공약으로 "대한민국 747"을 앞장세웠다. 해마다 7%씩 경제 성장해, 국민소득 4만 불을 이루고,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이렇게 저성장한 때가 없었다. 법질서만 확립돼도 GDP성장률이 1% 올라간다. (당시 성장률 전망치 5%에) 2% 정도 더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어쩌면 더 초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2007년 12월 방송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자신만만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7%는 불가능한 얘기라는 반박에는 "그건 경제학자들의 시각"이라고 일축했다. 유세장에서는 "일자리 300만 개를 만들겠다", "임기 첫 해에 주가가 3,000포인트까지 올라가고 임기 말에는 5,000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장담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경제학자들은 앞다퉈 ''7% 성장은 가능하다''고 말했고, 보수 언론은 확대 재생산 했다. 국민들은 믿었고, 이명박 후보는 당선됐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첫 해. 2008년 경제성장률은 2.2%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에서 1만9,231불로 곤두박질쳤다. 3,000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주식시장은 반토막 났다. 연초보다 40% 폭락한 1,124포인트로 마감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성장률이 0.2%로 무(無)성장에 가까웠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2010년에는 대기업 수출약진과 2009년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6.2%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것도 7% 성장 공약에는 못 미쳤다. 국민소득은 가까스로 2만 불을 다시 회복했다.
올해도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성장률이 3.8%에 그칠 것으로 잠정 집계됐고, 정부의 내년 경제 전망은 성장률 3.7%로 더욱 어둡다. 내년에는 수출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돼 4만 불은 커녕 가까스로 회복한 2만 불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힘겹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전망치대로 나온다고 가정하면 MB정부 5년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3.22%다. 취임 초 내세웠던 7%는 고사하고, 이 대통령이 ''무능한 정부''라고 비난했던 참여정부 5년(2003-2007)의 평균 경제성장률 4.3%보다 외려 1% 모자란다. 반대로 물가상승률은 MB정부 초부터 올해 말까지 평균 3.7%에 달했다. 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92%였다.
◈ "경제위기 속 선방" vs "MB정권은 불임정권"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예기치 못한 세계 경제위기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획재정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우리나라가 대외여건 악화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 OECD 주요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2008년과 2009년에도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또 ''OECD 34개 국가 중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간의 격차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5번째(-0.6)로 매우 양호''했다고 평가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선방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MB정부가 잘해서 거둔 성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학)는 25일, "중국의 호황기조 덕택에 한국경제는 순항할 수 있었다"며, "현 정부가 정책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조 교수는 또 "금융위기가 2년쯤 더 늦게 왔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히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 금융위기인데, MB정부의 당초 정책 기조대로 우리 경제를 세계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적극 편입시켰다면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논리다. 조 교수는 "이번 정권은 어떤 생산적인 정책도 수행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불임 정권''"이라고 혹평했다.
경희대 권영준 교수(국제경영학)는 "100미터를 12초에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8초로 기록을 앞당길 수 있겠냐"며, "당시 4.5% 수준의 잠재성장률에서 7%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현실을 모르고 하는 무식한 소리였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또 "만약 금융위기가 없었고 정부가 무리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했다면 엄청난 경제적 부작용이 나타났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8년 2월 3일, 봉천동 원당시장을 찾은 이명박 당선인은 "열심히 한 번 해보겠다. 서민경제가 잘 돼야 재래시장도 잘되고 그래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고 말했다. 4번의 겨울이 지난 2011년 겨울. 이명박 당선인에 기대어 울었던 생선가게 할머니의 좌판은 사라졌다. 아무도 할머니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마치 MB의 747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