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열린 경주 국제마라톤에서 선수들이 코스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아프리카 선수들이 달린 선두 그룹이 4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한 후 운영 요원들이 철수해 버리면서 뒤따라오던 국내 선수들이 코스를 이탈한 것이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대로라면 유명 아프리카 선수들만 대접받고 국내 선수들이 찬밥 신세가 되었단 이야기이다.
◇ 자본이 사육하는 흑인 스포츠 스타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 선수들은 왜 그리 잘 뛰는 걸까? 학계에선 체형에서 이유를 찾는다.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지방질이 적고 엉덩이가 좁다. 팔.다리는 긴데 허벅지는 두텁고 종아리는 가늘다. 거기에다 머리도 작은 것이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물론 흑인들도 두 종류로 나뉘어 체형을 구분한다. 서아프리카.중남미 쪽의 흑인들은 근육이 ''''속근'''' 중심으로 발달해 순간 파워를 내는 단거리에 강하다. 자메이카 등이 대표적이다. 중남부 아프리카 흑인은 힘은 약해도 장기간 힘이 지속되는 ''''지근''''이 많아 마라톤에 강하다. 케냐, 이디오피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계급 차별에 의해 흑인이 세계대회에 육상 선수로 나서지는 못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처음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세계 스포츠는 흑인들이 지배한다고 할 정도로 여러 종목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아닌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의 흑인들이 세계 스포츠 무대를 휩쓰는 배경에는 서구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케냐,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린 육상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 자본으로 육성된다. 축구 종목에는 이탈리아 등 주로 유럽 자본이 투자를 많이 한다. 최근엔 일본도 돈 싸들고 여기 저기 기웃거린다고 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지긋지긋한 굶주림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스포츠이기에 서구 자본주의의 투기꾼들은 아프리카의 유망한 어린이, 청소년들을 헐값에 사서 종신 계약을 맺고 훈련을 시켜 뛰어난 선수로 키운 뒤 관련 팀이나 클럽에 비싼 값을 받고 판다. 아프리카의 유망주는 값이 싸니 대대적으로 모집해 투자하지만 어차피 몇 명만 선택되고 나머진 버려진다. 버림받은 대다수 흑인 스포츠 꿈나무들은 서구 선진국의 불법체류자가 되어 뒷골목을 헤매는 게 오늘의 실상이다. 이를 두고 현대판 노예상인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씨족공동체의 성격이 강해 친척들이 한 마을을 이뤄 사는 경우도 많다. 어느 마을에서 흑인 축구 스타나 육상 스타가 배출되면 그 마을 친척, 이웃 전체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흑인 아이들로서도 스포츠가 유일한 탈출구이니 알고도 나서야 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자본의 사육을 비난만 하기도 난감한 현실이다.
◇ 돈의 자유 vs 인간의 자유
지구촌의 자본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사서 키운다. 경제 위기를 맞은 나라에 돈을 싸들고 가 주요 산업과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 뒤 몸값을 키워 비싸게 팔아넘기는 먹튀는 우리도 이미 겪어 알고 있다. 외환은행의 론스타도 있고 쌍용 자동차도 투기 자본에 의해 희생당한 ''먹튀''의 한 예이다.
겉으로 드러난 ''먹튀''도 있지만 계속 이익을 빼내가는 ''빨대'' 스타일의 국제투기자본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삼성전자도 외국계 자본이 51%가 넘고, 금융계는 특히 심해 KB금융 63.4%, 신한금융 61%, 하나금융 65.7%, 우리금융 21.7% 이다. 외국계 자본은 성격상 투자냐 투기냐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고배당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계속해 높은 배당금을 가져가려면 수익이 나야 하고 불황 속에서도 수익을 내려면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례로 KT는 민영화 선언 이후 주주 절반 이상이 외국계자본과 사모편드로 구성됐다.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1만5천명에 이른다. 제일은행은 국가로부터 7조원의 공적자금이 부어졌고 6억 달러에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됐다. 그 후 스탠더드 앤 챠터드 에 팔려 SC제일은행이 됐다가 이제는 ''''제일'''' 도 빼고 SC은행이 될 판국이다. 제일은행을 6억 달러에 산 뉴브리지캐피털은 10억 달러 이상의 시세차익을 냈을 거라고 한다. 그걸 남겨 주기위해 피와 땀을 바친 건 한국 사회와 금융 노동자들이다.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란 <돈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자유>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쓰나미보다 거센데 바람보다 빠른 돈의 자유를 어찌 잡을 수 있을까? 그것이 지구촌 금융자본규탄 시위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 가장 커다란 행동은 바로 <멈춤>
다시 마라톤 이야기로 넘어가자. 영국의 앨런 시리토가 쓴 <장거리 주자의 고독>이라는 이야기다.
빈민가 출신인 꼬마가 어릴 때부터 훔쳐 먹고 말썽부리고 도망치며 자라다 보니 달리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빵집을 털다 잡혀서 소년원에 들어갔는데 그의 강철 같은 다리는 금방 소년원장 눈에 띄어 전국 장거리육상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경기가 시작돼 꼬마는 단연 앞서 달리다 1등으로 결승선 앞에 이른다. 이제 테이프만 끊으면 소년원에서 편안한 삶과 특별대우가 보장되기 일보직전, 하지만 꼬마는 거기서부터 제자리 뛰기를 시작하며 세상을 비웃는다.
명예와 재물만 챙기려는 탐욕스런 소년원장, 꼬마들이 훔쳐 먹고 죽어라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암울한 빈민촌의 현실엔 관심도 없고 그저 달리기 잘하는 것만 주목하는 멍청한 세상과 더 멍청한 언론들... 그 앞에서 꼬마는 세상을 상대로 제자리 뛰기라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어쩌면 그 꼬마의 <멈춤>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을 지 모르겠다. 자기의 이익과 편리함을 일부 내놓고 포기하며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우리 스스로가 멈춰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모두가 대박과 성공을 행해 미친 듯 달리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성장하는 토양이고, 남보다 앞서 가려는 욕망 속에서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나올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