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대법원장은 27일 취임식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은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대법관 13명이 법률해석의 통일보다는 하급심 잘잘못을 따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매년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수는 평균 3만6,000여건"이라며 "고도의 법적인 경험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또 "(대법관 구성에) 적어도 특정 학교, 특정 지역 일색은 곤란하다"면서도 "그러나 현재의 법조인 후보군 저변이 그 이상의 다양성을 추구할 만큼 넓지 않은 것도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양 대법원장의 이런 발언은 오는 11월 김지형(53), 박시환(58) 대법관 퇴임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파격'' 인사를 취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대법관 증원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대신 상고허가제 도입을 제한했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관 증원은 지금의 왜곡된 현실을 더 심화시키는 것 밖에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전 세계에서 상고허가제가 없는 곳이 없다"며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도 맞고 법 현실에도 적합하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란 항소심 재판이 끝난 뒤 원고 또는 피고가 상고를 희망할 때 대법원이 원심 판결 기록과 상고 이유서를 토대로 상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로 무분별한 상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지난 1981년 도입됐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3번 재판받을 권리와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 1990년 폐지됐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체계를 세운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양 대법원장은 "과거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을 맡았을 때 국민참여재판을 추진 계획으로 세운 적이 있다"며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이를 적극 도입한 것은 매우 잘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배심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등 절차 지연의 단점이 있기 때문에 형사사건을 넘어 민사까지 확대할 지는 좀 두고봐야겠다"고 말했다.
불구속 재판 원칙 역시 지켜져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양 대법원장은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소송법에 이미 명문화돼 있다"며 "법원에서 양보할 수 없고 원칙을 추구해야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양 대법원장은 미국와 영국에서 시행중인 보석조건의 다양화를 통한 구속집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양 대법원장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발부 단계에서 보석조건을 정해버린다"며 "구속영장은 사전처벌이 목적이 아닌 만큼 구속을 시키면서 보석을 한꺼번에 해버리면 구속의 효과도 달성하고 신체의 자유도 제한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 석방제도가 담보된 영장항고제 도입 논의는 지난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때부터 수차례 반복되고 있는 논의 가운데 하나다.
이와 함께 양 대법원장은 진보냐 보수냐 등 자신을 둘러싼 좌우 이념 논쟁에 대해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양 대법원장은 "사람을 보수다 진보다 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된다"며 "줄을 세워버리면 까닭없는 반감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시민으로서 법을 준수하고 수호하는 데 철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