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그림,''이충무공 동상이 목까지 잠겼네''

<임옥상의 토탈아트>, 가아트센터, 8.26-9.18, 회화, 설치 등 60여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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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화폭에 화려한 색채로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8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미술가 임옥상의 작품을 대면한 첫 느낌은 의외였다.민중미술가의 전위로서 그림을 통해 날선 비판을 해오던 그의 작품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과거 작품에서 황토흙에 핀 흰색 꽃은 담박한 느낌이었지만, 이번에 전시된 꽃그림은 왜 이리도 농염해진 걸까? 대형 화폭의 꽃그림 중에는 여성의 성기를 닮은 꽃을 향해 남성 성기모양의 벌레가 힘차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장면에서 관능이 폭발하고, 벌레들의 소용돌이 행진은 앙리마티스의 작품 <군무> 못지 않게 신명이 난다. 보라빛 커다란 꽃잎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한껏 폼을 잡은 여치의 모습에서,인간 못지 않은 여유와 한량기가 느껴진다. 다른 꽃 작품은 중앙에 외눈(바로 아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중앙에 두 귀가 마주보고 있는 게 있다. 그 아름다운 꽃에 눈과 귀가 달린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임작가는 "꽃처럼 아름다운 것만을 보고 들으며, 꽃처럼 아름다움을 발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두 귀를 합하니 우정을 상징하는 하트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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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작가가 꽃에 몰두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8년간 공공미술에 전념하다 보니, 이제는 개인적인 것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쌓일만큼 쌓여,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시킬 수 있는 소재로 꽃을 선택한 거죠"라고 했다. 8년 만에 변한게 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더 멋져진 것"이라고 장난스럽게 웃는 임작가의 모습에서 꽃 작품에서 풍기는 에너지와 열정이 감지되었다. 그는 더 멋져지는 것이란 "나를 없앰으로써 나다워지는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공공미술에 공을 들인 세월이 임작가 자신을 비우게 했고, 그 비움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생기와 생명력이 분출하는 자유를!

임옥상 작가의 전시작품들은 색다른 면모의 꽃 작품을 비롯해 흙, 철,살, 물,불 등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자연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명''을 열쇠말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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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작가에게 흙은 지구의 살로 표현되며, 그의 흙작업이 전시관 안으로 들어온다. 길이 아스팔트로 덮이면서 흙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흙의 전시장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흙담에 새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가족, 친구들, 뉴스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들이 새겨져 있다. 임 작가는 "흙은 무시하는 삭막한 현실에서, 흙작업을 통해 흙냄새를 맡고 숨쉬는 생체리듬을 복원하고자 했다"고 한다. 흙을 통해 원자화된 개인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의 사이를 흙처럼 보송보송하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흙벽으로 만든 방 안은 ''나만의 공간''이다. 관람자가 이 공간 안에 들어서면 임옥상 작가의 깊은 성찰이 담긴 글귀들이 사방 벽면에 빼곡히 적혀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차라리 미지의 것,불확실한 것,확인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것이 낫다. 최소한 교만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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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벤타코리아의 벤타 에어워셔의 다쓴 필터를 이용한 설치작품,''벤타에코미르 전설''은 자연의 순환적 사용을 환기시킨다. 용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타에코미르는 한국의 강가에서 거대한 여의주를 가지고 놀며 아름다운 물보라와 물안개를 만들어내는 존재다.에코미르는 자신이 사용할 에너지를 바람이나 비 그리고 물의 힘으로 있는 그대로 이용하여 청정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물은 현실세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은유로도 쓰인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의 목까지 물에 잠겨버린 광화문 광장의 풍경을 담은 <광화문 연가>(맨 위 작품)는 광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씁쓸한 현실을 풍자한다. 임작가는 "광화문은 구한말의 역사,6.29 시위, 월드컵 응원전, 촛불 집회 등 우리 삶의 공간으로서 누구나 관심을 안 가질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관제데모와 교통통제 등으로 역동성이 상실되어 버렸다."며 "즉흥적 대처가 아닌 거리, 광장, 대한민국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항상 시대적 화두를 놓치지 않고 미술작업을 통해 치열하게 현실에 개입해온 임옥상 작가는 공공미술에 천착하며,자연,사회,인간 모두를 살리는 ''생명 · 생태''의 조형언어를 구현한다. 공공미술은 임 작가의 작업세계를 더욱 탄탄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이끌었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업적주의는 그 분야에 열정을 바친 그에게 실망과 회의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래도 임작가는 여유가 생기면 공공미술에 공을 들이겠다고 했다.이러한 소회와 그의 작품세계를 직접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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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는데, 흙의 의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땅을 그리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박정희 시대가 등장한 이후 그 칼날이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그것은 분단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부동산과 부의 집중을 가져왔다. 땅은 이 시대의 사회학적, 정치적, 역사적 모순을 담고 있다. 왜 땅의 모순과 갈등이 심한가. 흙 속에 답이 있다. 생각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흙을 다루면서 나왔다.일반 흙은 보송보송하다.흙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공공미술이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림에 대한 생각을 배웠죠. 공공장소에서는 너무 자신을 내세울 수가 없다. 공공미술은 먼저 들을 수 있게끔 열어놓는게 중요하다. 내 얘기는 괄호에 묶고 절제해야 된다. 공공미술은 나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되어야 세상이 제대로 된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으려고 했다."

-공공미술 작업에 보람을 느끼는가?

"지금은 공공미술에 대한 매력을 조금 잃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미술이 굉장히 확산되고 있다.처음에는 작가를 존중하더니, 나중에는 공무원들이 작가를 홀대한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자치단체장이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도구화하는 거다. 작가가 이용당할 필요가 뭐 있나. 디자인서울사업이 대표적이다. 디자인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서울사업은 더러운 것 감추고, 보기싫은 것을 예쁘게 치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뉴타운 사업도 마찬가지다.우리 모두 공공으로 나와야 하는데, 사유화하고 있다."

-공공미술에 회의를 느꼈다고 하는데, 이제 그만할 생각인가?

"(웃음)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공공미술을 하고 싶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즐거움이 크다. 기쁨이 솟을 때 그게 얼마나 좋아요. 모든 장소에서 함께하는 즐거움, 서로 박수 쳐주는 즐거움,이래서 의기투합하는 거죠."

전시기간:8.26-9.18
전시장소:가나아트센터 1,2,3전시실(전화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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