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대표실 불법도청 사건 뒷이야기를 해보자.
◈녹취록을 꺼내 공개한 한선교 의원= 한선교 의원이 입을 열면 사태의 전말은 간단히 밝혀진다. 현재 민주당이 ''''오늘(30일) 정오까지 이실직고 하지 않으면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시한부 경고를 해 놓은 상태이다.
전기통신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법 제 16조(벌칙)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만이 아니라 불법도청을 통해 취득한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에 대해서도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국회의장= 국회의사당 야당대표실이 불법도청 당했다면 국회의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사무처를 총동원해 진상조사를 벌일 일인데 화도 안내고 너무 태연한 것 아닌가? 늘 유리창 깨지고 해머로 문 부수고 몸싸움 벌이고 하다 보니 웬만하면 눈도 깜빡 않는 깊은 내공을 쌓은 모양이다.
◈한나라당= 집권 여당이 언론사가 불법도청으로 취재해 넘겨 준 걸 제 1 야당을 공격하는데 썼다면 정말 백배 사죄할 큰 문제이다. 한선교 의원의 해명에서 짐작되는 대로 ''''민주당이 녹취록 만든 것을 모종의 경로를 통해 넘겨받은 것''''이라 해도 문제이다. 제 1 야당에 ''밀정''을 심어 놓고 당 대표실 최고위원 회의가 끝나는 즉시 기록이 넘어오게끔 공작을 펴왔다는 의미인데 언론사가 넘겨준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한선교 의원이 개인적으로 그런 작업을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바라기는 속히 진상을 조사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 그것이 최선의 길이자 공당으로서, 집권여당으로서의 마땅한 처신이다.
◈민주당= 합의에 번복에 미끄러져 내려가며 뒷걸음질 치다가 쥐 밟아 잡은 격이 아닌가? 상대 당 의원이 스스로 도청문서 들고 걸어 들어와 수신료 인상 문제까지 해결해 줬으니 억세게 운 좋은 여름이다.
KBS가 불법도청을 했나, 안했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인데 경찰 수사가 밝혀 내는 걸 기다려 본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잘못 들으면 오해할 수 있는 애매한 해명이다.
국회와 언론계에는 KBS 모 기자가 당대표 실 앞에 계속해 머물고 있었다는 목격자들 진술이 나오면서 장본인이 아닐까 주목 받고 있는 중이다.
29일 밤 일부 언론(오마이뉴스 등)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KBS 이사 몇 명이 27일 밤(KBS가 최초로 언급된 날) 서울 교대역 부근의 설렁탕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김인규 KBS 사장이 불쑥 등장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제의 녹취록 이야기가 나오자 ''''KBS 기자가 취재한 게 그 쪽(한나라당)으로 넘어간 게 아닌지 걱정 된다''''라고 말했다는 것.
KBS 야당 측 이사들이 전한 김인규 사장의 언급내용인데 직접 확인은 안 된 상태이다. 도청인지 엿들은 건지에 대한 설명도 들어있지는 않다. 그러나 KBS가 문건의 제공자일 가능성이 있음을 스스로 언급한 것은 주목해 볼 일이다.
30일 오후 3시 KBS 이사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김인규 사장의 어느 정도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기자(記者)는 무엇으로 사는가?= KBS 국회 취재 기자들이 수신료 인상 문제와 관련해 너무 적극적으로 취재활동 내지는 그 이상의 활동을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야당의 비난성명까지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 전재희 국회 문방위원장이 KBS 기자에게 볼멘 소리로 ''''민주당 설득을 다 했다면서 어떻게 설득했길래 상황이 이래요? 오늘 집에 가기도 다 틀렸네''''라고 하자 KBS 취재 기자가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에게) ''''원인 제공은 저쪽 민주당이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참고만 있을 겁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대화들로 미루어 보면 수신료 인상을 놓고 한나라당과 KBS 간에는 모종의 협력이 있어 왔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다. 거기에 취재 기자들이 뛰어들어 취재 활동보다 더 열을 올렸다면 기자 윤리 상 바람직하지 않다.
기자는 직속상관이 아닌 다른 누구의 명(命)에도 굽히지 않아야 한다. 사장, 이사 등 회사 내부의 압력, 권력과 금력의 압력을 떨쳐내도록 하기 위해 직속상관의 지시만 따르라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직속상관이 국가와 사회의 공익에 반하는 지시를 할 때는 기자로서 거부하는 것도 기자의 본분이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이익이 인간으로서의 양심에 반하는 것일 경우 그 때도 기자는 결단해야 한다.
''뛰어난 기자''가 되려면 직속상관의 명을 잘 따르면 된다. ''훌륭한 기자''가 되려면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면 된다. ''오직 기자''가 되고자 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맨 앞에 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