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의 명가,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 가족사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관여 혐의 구속

수천억원대의 불법대출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부산저축은행의 2대 주주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59)은 광주의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유명인사이다.

기존에 대형 경제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등장하곤 했던 중소 건설업자나 브로커 등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인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우선 박 회장 본인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 회장은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에 가입·활동한 혐의로 기소돼 10개월 동안 수감됐었다. 박 회장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반대하는 집회를 계획한 것은 인정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내란을 음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박 회장의 형인 화강씨는 한겨레신문 민권사회부 부국장과 국장대우, 고문 등을 지낸 뒤 참여정부 때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화강씨는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임기를 1년 이상 앞두고 사직서를 내면서 청와대와 환경부의 압박 때문이라고 밝혀 파장이 일기도 했다.

박 회장의 여동생은 전남대 재학 중인 1978년 들불야학을 창립해 노동자 야학운동을 이끌다 같은해 12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박기순씨이다.

당시 들불야학은 70년대 말 광주 지역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서 구심점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이 야학 출신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박기순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계엄군의 도청 진압 때 투항을 거부하며 항전 중 숨진 고 윤상원씨와 영혼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민중가요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바로 이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또 박 회장의 부인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수배되자 미국으로 밀항해 12년 동안 망명생활을 한 뒤 귀국했다 2007년 지병으로 숨진 고 윤한봉씨의 여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의 이같은 가족사를 아는 주변 인사들은 박 회장의 구속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인사들과 친하다는 말에도 이견이 있다. 오랜 민주화운동 경력 때문에 친분은 있으나 소위 ''마당발''이니 하는 쪽과는 거리가 있고 일부 인사들과는 불화를 빚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산저축은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박 회장이 구속기소된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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