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2011년 ''카이로의 봄''과 1980년 ''서울의 봄''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를 철권 통치해 왔던 무바라크의 30년은 국민들의 18일간의 항쟁으로 막을 내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절대 권력자처럼 군림했던 무바라크가 물러나던 순간에도 5천년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였던 나일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시민들은 최루탄과 화염병, 돌로 뒤범벅이 되어 전쟁터가 되다시피 한 시가지를 치우고 빗자루를 들고서 거리를 청소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분신자살한 노점상 청년의 처참한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올려 지면서 촉발된 튀니지 발 독재정권의 퇴출은 곧바로 이집트로 이어졌다.

오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이제 리비아와 예멘, 모로코와 요르단, 시리아 등 이웃 중동국가로 옮겨가는 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이 완수되었다고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 무바라크는 하야했지만 아직 민주화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모든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단축하긴 했으나 통금지역은 수도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뿐 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했다.


민주정부의 이양 때까지 한시적이라고 하지만 향후 이집트의 미래가 군부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별다른 흑심 없이 권력이양을 위한 단계별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느냐다.

특히 군부가 "앞으로 취할 조치, 절차, 지시 등에 대한 윤곽을 담은 성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눈 여겨 볼 대목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도 79년 10.26사태로 박정희의 18년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이듬해인 80년 민주화의 봄은 시작되는 듯 했다. 김대중, 함석헌을 비롯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주요 인사들의 복권이 이루어졌고 개헌이 논의되고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부활되는 등 억눌려있던 민주화의 함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DJ와 YS, JP 등 3 김 씨에게 서울의 봄은 참 순진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너무나 크나큰 투쟁 앞에서 숱한 시민들이 폭도로 매도되어 죽음을 당했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에게 12.12와 5.17 쿠데타에 이은 5.18은 정권 찬탈의 빙점이었던 셈이다.

유신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 민주화의 봄이 왔다며 정치 기지개를 켜던 DJ는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고, YS는 선동분자로 가택연금 되었다. JP는 부정축재자로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80년 서울의 봄은 춘래불사춘일 뿐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을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체육관 대통령으로 뽑힌 전두환은 8년을 집권하고도 호헌조치 등 장기집권의 야욕을 보였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사건은 6.10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6.29 선언을 이끌어 내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김대중 김영삼의 단일화 실패로 다시 노태우 군사정권이 93년 2월까지 이어지는 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이내창, 조성만, 이철규, 강경대 등 꽃다운 젊은 대학생들이 숨을 거둔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처럼 80년 서울의 봄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의 봄을 기뻐하면서도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지 않을 수 없다. 시위대는 정치범의 즉각 석방과 30년 동안 지속돼온 긴급조치법 폐지를 등을 요구하고 있다. 80년 서울의 봄과 너무 흡사하다.

권력의 전면에 나선 군부가 정말 대국민 약속대로 오는 9월 대선까지 과도기적 정치상황을 신탁관리만 하고 새로운 민주정부에 통치권을 넘겨주느냐다.

현재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사미 에난 참모총장,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 등 민간정부가 아닌 현재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의 실권자가 등장하지 않는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만약 군부가 정권 전면에 나서면 카이로 민주화의 봄은 80년 서울의 봄처럼 다시 길고 긴 인내의 세월과 더 많은 피의 희생을 요구할지 모른다.

이집트 군부가 탱크를 앞세우고 총칼이 있다고 해서, 잠시 위임된 통치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착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집트 국민들이 지켜보고 전 세계가 두 눈 부릅뜨고 있음을 직시하게 해야 한다. 80년 서울의 봄 같은 시행착오는 한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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