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는 성폭행이나 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어서 낙태, 미혼모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안은 고민과도 겹쳐 있지만, 범행을 저지른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게 다반사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사회시스템이나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해 미혼모들의 영아살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성폭행·빈곤 후유증…여성에만 굴레 = 지난 3일 경찰에 붙잡힌 김모(37.여)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5시30분께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모텔에서 여아를 혼자출산하고 곧바로 질식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남성과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지만 김씨는 도저히 키울 자신도 없었고 애초 임신과 출산을 기대한 것도 아니어서 범행을 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김씨의 영아 살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스물 네살인 1997년 부산의 한 철학관 역술인에게 성폭행을 당해 원치않는 임신을 하자 아이를 낳고 나서 같은 방법으로 살해해 1년간 복역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 속에 김씨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싫어져 그때부터 남장을 했다.
외모상 완벽한 남자로 변신한 김씨는 올해 다시 원치않는 임신을 했고, 생활고로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를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두번째 영아 살해를 했다.
성폭행과 영아 살해라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을 지닌 채 김씨는 사회단체를 전전하며 한달에 10만~20만원을 받아 생활했고,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찜질방, 모텔, PC방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하고, 생활고 끝에 사기와 절도 등으로 7차례나 복역하기도 했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가족과 연락도 닿지 않았고, 혼자 임신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임신 중에는 병원에 가볼 엄두도 못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낙태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병원에 가면 낙태를 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신중 병원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고 했다"며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서 양육하기 어렵거나 성폭행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영아 살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낙태ㆍ미혼모 문제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 경찰청 조사 결과 2005년부터 작년7월 말까지 김씨처럼 영아 살해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는 전체 46명으로 이 중 구속된 이는 14명(30%)에 그쳤고 나머지 32명(70%)은 불구속 입건됐다.
불구속 입건된 사례가 많은 것은 아이를 낳고서 양육하기 어렵거나, 성폭행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해 영아 살해 동기에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아 살해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행위지만 `미혼모''라는 낙인, 생활고 등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몰고 간 외부 영향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치않은 임신으로 출산했을 때, 특히 10~20대 미혼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없애고 미혼모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법등으로 영아 살해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교수는 "영아 살해를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미혼모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에서 낙태가 안 된다면 살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배은경 서울대 교수는 "혼외 임신한 것을 안 좋게 낙인을 해버리는 분위기 속에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제도는 잘 갖춰지지 않았다. 10~20대 미혼모는 아이를 양육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떠안아야 해 빈곤으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지원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 상담소나 법적, 의료적 지원 시스템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홍보 부족 등으로 지원체계를 모르는 여성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김병근 참사랑 성폭력상담센터장은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대학병원의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많은 여성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센터에서는 원치않은 임신을 했을 때 대처법 등도 알려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