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상화는 가로 4.6m, 세로 6m 크기에 무게가 1.5톤이나 나가는 대형초상화여서 광장 반대편에서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초상화가 톈안먼에 걸린 것은 언제부터이고 또 화가는 누구일까?
이 초상화는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할 때부터 걸려 있었고 지금까지 모두 4명의 화가가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톈안먼에 걸린 첫 번째 마오 주석의 초상화는 이후 그림들과는 모양이 크게 다르다.
8각의 모자를 쓰고 있고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초상을 그린 사람은 국립예술전문학교(현재 중앙미술학원의 전신) 강사였던 저우링자오(周令釗)였다.
1949년 4월 20일 국민당과의 협상이 열렸던 회의장소에 그가 그린 마오 주석의 초상화가 걸렸는데 당시 지도부가 그 그림을 흡족하게 여겨 그로 하여금 텐안먼에 걸릴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첫번째 초상화는 신화사 사진국에서 옌안(延安) 시절 마오 주석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처음에는 사진 원본대로 상의의 단추가 잠겨져 있지 않은 상태로 그렸지만, 당시 건국선포식을 준비하던 장군의 지시에 따라 단정하게 단추가 잠긴 모습으로 1차 수정을 했다.
그러나 건국선포식 전날인 1949년 9월30일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가 사전 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한차례 수정을 거쳐야 했다.
당초 초상화 밑에는 "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오쩌둥의 친필이 있었으나 저우 총리는 "겸손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글을 지우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글자가 있는 부분을 지운 뒤 옷을 덧입히는 수정을 가했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1년밖에 사용되지 못했다. 1950년 건국 1주년을 앞두고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전국에서 30명의 화가를 불러모아 마오쩌둥은 물론 류샤오치(劉少奇)와 저우언라이 등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뒤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장전스(張振仕)로 하여금 마오주석의 초상을 그리도록 했다.
이 초상에서 마오 주석은 군복과 모자를 벗은 모습이었으며 약간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한쪽 귀는 가려진 상태였다. 장전스는 이후 60년대 중반까지 제자와 함께 톈안먼에 걸리는 마오주석의 초상화를 전담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 주석의 초상화는 다시 왕궈둥(王國棟)이라는 화가에게 맡겨졌다.
왕궈둥은 장전스가 그린 초상화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오늘날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가 1964년 처음으로 그린 초상화는 신화사가 제공한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져 중앙정치국의 승인까지 받은 것이었다.
당초 신화사가 제공한 마오 주석의 사진에는 한쪽 귀가 나오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는 장전스가 그린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오 주석의 한쪽 귀만 그려진 모습은 마오 주석이 사람들의 말을 편향되게 듣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만큼 양쪽 귀가 모두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 주석의 초상을 그렸던 장전스는 마오 주석의 초상이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군중을 무시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그리고 한쪽 귀만 나오게 그렸다는 이유로 군중들에게 비판을 받고 구타를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궈둥은 1992년 은퇴를 하면서 제자 거샤오광((葛小光)에게 마오 초상을 그리는 임무를 넘겼다.
거샤오광은 스승인 왕궈둥 밑에서 마오쩌둥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해 이미 25년이 넘게 마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는 해마다 최소한 한 장, 어떤 해에는 두 장을 그리지만 매번 그릴 때마다 감회가 다르다고 말한다.
마오의 초상에서 특징은 아랫입술 밑에 있는 사마귀가 초상화의 상하를 구분하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또 1977년 이후, 톈안먼에 걸려있는 초상화는 매년 건국 기념일인 10월1일 직전에 새로운 초상화로 교체된다.
건국 60주년 기념일을 앞둔 지난 27일에도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 교체작업이 진행됐다.
한편,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두 차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민주화 운동가이자 기자인 위둥웨가 붉은 페인트가 담긴 계란을 던진 적이 있었다. 위둥웨는 초상화 훼손 혐의로 16년 동안 수감됐다가 지난해 지난 2006년 석방됐다.
또 지난 2007년 5월에는 정신병자로 알려진 한 남성이 인화성 물질을 초상화에 던쳐 초상화 밑부분이 그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