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강남역 가듯 목포 맛집 가요"…강진 사는 新청년들 ②"왜 다 서울로? 울분이 찼다" '소멸 위기'로 사업하는 청년 ③넥타이 '질끈' 서울내기가 400평 다래 농사 짓게 된 사연 ④전 세계 50곳 돌았던 그녀…서울 아닌 '완주'였던 이유 ⑤"남해의 미래요? 그냥 서울 가고 싶죠" 그럼에도 남은 이유 ⑥"인구, 늘어봤자 정치인이나 좋아…지방 소멸 대위기? 과장됐다" ⑦지방 소멸 돌파구 '여기' 있다…골목길 경제학자의 처방전 |
'띠용과 혼란 사이'
서울을 떠나 비로소 내 삶을 찾은 성공 신화가 아니다. 패기를 갖고 서울을 떠났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고민 중이다.
"성공한 것 같지도 않아요. 실패의 연속 같아요"라는, 어쩌면 교착 상태에 빠진 청년. 자신을 '꼬막'이란 별칭으로 불러달라던 안지원(33세) 씨 얘기다.
경기 하남시 세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지원 씨는 13살 때 이른바 '강남 3구' 송파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으로부터 '타이틀'이 항상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심지어 SKY라는 '간판' 때문에 지방캠퍼스까지 택했다.
평범한 수순을 충실히 밟았고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7년 '친구 따라' 남해에 왔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나고 자란 서울, 그리고 갇혀있던 교과서 같은 삶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컸다.

"(남해는) 아무것도 없는 게 좋았어요. 서울이랑 멀고. 도시 사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느낄 것 같아요. 도시는 좀 복잡하잖아요. 경쟁도 많고…근데 남해는 (반대로) 아무것도 없으니까. 뭔가 여기 오면 나의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그런 희망이 있었겠죠, 제가?"
그러나 녹록지 않았다. 돈벌이도 없었다. 결국 2년을 못 채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3년 뒤 2022년 다시 남해행을 택했고 지금까지 정착해 살고 있다.
정리하면 지원 씨는 서울과 '헤어질 결심'을 두 번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도착지)는 남해였다.
"제가 (첫 남해행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는데, 주변에서 내 10년 뒤 미래를 보잖아요. 근데 그들의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팀장님을 보면, '저렇게 사는 게 좋은 삶일까?' '내가 살고 싶은 삶일까?'…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고, 그런 삶이 재미없어 보이는 거죠. 특히 직장에서의 삶이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의 평균이 곧 나'라는 말이 있다. 지원 씨는 주변인의 삶을 근거로 10년 뒤를 가늠했고, 뻔한 결말을 바꾸고 싶었다.
지원 씨는 지역 곳곳의 유휴 공간을 지자체가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운영 계획을 짜주는 회사를 다녔다.
"공공 용역을 수행하는 회사에 다녔으니 큰 규모의 일을 할 수 있었죠. 근데 포지션을 플레이어로 바꿔보고 싶은 거예요. 작은 규모라도 직접 뭔가를 할 수 있는."
그래서 지역 소멸 '위기'라는 남해군이 지원 씨에겐 반대로 '기회'의 땅으로 보였다.
"서울에 계속 살면서 도파민, 그러니까 자극이 없는 거죠. 커리어든 교우관계든 연애든 다 충실하게 해왔거든요. 그렇게 사는게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 재미가 없었어요. 근데 '서울이 아닌 지역? 새로운데?' 남해로 가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고…지역에 간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띠용'하게 만들잖아요."
그러나 지원 씨의 설명처럼 모두가 '띠용' 하는 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10년간 경상남도의 약 11만명 청년이 순유출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결국 경남 시군 중 60% 이상이 인구 감소지역에 지정됐다. 왜 다른 청년들은 이곳에서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걸까.
"진짜 일자리가 없어요. (근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서울에서 남해 올 때도 '어디든 좋은 일터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보통 노동자로서 살 때 좋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싶잖아요. 근데 '좋은 일터'라는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서울 살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럴거면 차라리 내 일을 하는게 낫겠다, 싶었고 지금도 비슷해요."
그녀는 남해에 오고서야 진정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 어쩌면 서울에서 느꼈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에 대한 답을 찾은 거다.
남해라는 지역 자체만으로 '어떻게'가 채워지진 않았다. 그러나 백지 위에선 그냥 그은 선 하나가 그 자체만으로 작품이 되듯, 사람없고 일자리도 없는 남해에서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전부 그녀만의 삶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을 떠날 땐) 남해라는 핑계를 댄 거죠. '남해에 가면 더 나은 삶이 있을 것 같다'하고. 그런데 남해에 온다고 더 나은 삶이 있는 건 아니고, 내가 더 나은 삶을 살면 나은 삶이 되는 거였어요. '더 나은 개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지' 이런 생각을 해요."
※ [어쩌다, 지방?] 청년들의 풋풋한 모습을 숏폼으로도 보러오세요. 2360km를 달린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접속하세요. 사이트 주소를 복사 붙여넣기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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