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좀 해주세요" 연초 텅 빈 상점가…소상공인 '울상'

임시공휴일 지정에도 자영업자 한숨…폐업도 속출
부동산 "사람 바글바글했었는데…지금은 3분의 1로 줄어"

김미성 기자

"중구청장님! 의장님! 국장님! 과장님! 공무원노조위원장님! 너무 힘들어요. 직원분들 회식 좀 시켜주세요!"

15일 오전 찾은 대전 중구의 대표 상권인 대흥동 상점가에는 이런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연초 대목을 맞아 모임과 행사로 북적여야 할 거리는 썰렁 그 자체였다.

대흥동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창선(46)씨가 점심 장사를 앞두고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김미성 기자

점심 장사를 앞두고 양파, 대파, 고추 등 재료를 준비 중이던 김창선(46)씨는 최근 경기가 어떤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바깥을 가리켰다.

"이 골목이 (상권) 시작점이거든요. 원래는 점심시간 되면 이 골목으로 사람이 엄청나게 나오는데, 지금 보세요. 아무도 안 돌아다니잖아요."

김 씨는 대흥동 상권이 좋다는 이야기에 5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지만, 약 반년 전부터 거리에 사람이 뚝 끊겼다고 한다. 애초 이 식당은 점심, 저녁에 테이블 20여 개가 모두 차고, 대기까지 걸어야 밥을 먹을 수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10개 테이블도 차기 힘든 상황이 됐다. 결국 김 씨는 4명이던 직원을 2명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대전시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초저금리 특별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막상 김 씨는 체감하지 못했다.

그는 "몇몇 상인분들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갔는데, 이미 대출을 다 받아놓은 상태라 대출이 더 안 됐다"라며 "닭값만 수백만 원어치가 밀린 상황에서 500만 원이라도 조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숨통은 트일 텐데, 알아보면 조건이 너무 많다"며 한숨지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지만, 텅 비어있는 대흥동 골목. 김미성 기자

점심 장사를 준비하며 고기를 굽던 김은재(70)씨도 "처음에는 (장사가) 좀 잘 됐다. 그런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이사 가면서 (손님이) 3분의 1 줄고,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하고 나서 또 3분의 1이 줄었다"고 말했다.

6개월 전만 해도 점심 장사로 50만 원을 벌었지만, 지금은 20만 원 대로 반년 새 매출이 60%나 뚝 떨어졌다.

임시공휴일 지정과 관련해서는 "여기는 직장인 위주로 하는 데라서 그렇게 되면 손님이 없다. 다 쉬는데 누가 오겠나"라며 "그렇게 공휴일을 정하면 나도 같이 놀아야 한다. 문 열고 몇만 원 팔면 전기세가 더 나간다"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참사와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각종 회식이 줄줄이 취소됐고,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좀처럼 되살아날 줄 모르고 있다. 이 여파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이어졌고, 폐업하는 업체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대흥동 상점가 상인회 회원은 430여 명이지만 이 중 160여 곳에 달하는 37%가 한 달 새 가게를 내놨다고 장수현 대흥동 상점가 상인회장은 설명했다.

장 회장은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에 비상계엄까지 이어지며 매출이 70% 떨어졌다"며 "너무 힘들어서 상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치권에서는 내란이니 어쩌고 하면서 싸우는데 막상 상인들은 그런 데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대흥동의 한 부동산에 임대 종이가 붙어있다. 김미성 기자

대흥동에서만 30년 넘게 부동산을 운영 중인 최모(67)씨 역시 "한 달에 두, 세 명 정도만 부동산을 찾는다"며 "그마저도 시장 조사하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매물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사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게 문제라고 최씨는 말했다. 매물을 내놓지 않은 상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최 씨는 "이곳 상인들은 권리금을 많이 주고 들어왔고, 코로나 때는 대출도 받았다"며 "그러니 빨리 가게를 정리하고 싶은데,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거다. 경기가 안 좋고, 이자율이 높다 보니 사람들이 뭔가 하려고를 안 한다"고 분석했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분노와 불신도 깊었다.

최씨는 그러면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말도 못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에, 민주당, 국민의힘을 떠나서 301명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라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부동산에서 만난 한 남성도 "여야 할 것 없이 경제가 이렇게 어렵고 힘들면 머리를 맞대고 국민을 위해 상의하고, 경제를 살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 밥그릇과 욕심만 챙기면서 맨날 싸운다"며 "국민들이야 죽든 말든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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