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권한대행이 31일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일부 임명하면서 갓 출범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스텝부터 꼬이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나란히 유감 표명을 하면서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내놨다.
하지만 최 대행이 '재판관 일부 임명·쌍특검법 거부권 행사'로 뜻을 정하면서 강경 기조를 이어온 비대위로서는 타격을 입은 셈이 됐다. 정부가 여당보다 야당을 우선해 협상하는 듯한 상황마저 전개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반탄파'만 바라보다 일격 못 피해
권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에도 시종일관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듯한 발언만 내놨다.
권한대행은 헌재 재판관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쌍특검법(내란 일반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의 위헌성 지적도 이어갔다.
권 비대위원장은 "현직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윤 대통령이 받는 내란 혐의에 대해서도 "내란 특검법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내란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정하는 것은 문제될 수 있다"며 대야 협상력을 스스로 약화시켰다.
당초 국민의힘 내에서는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30일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로 되돌아온다면 야당과 위헌적인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해서 충분히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 등 협상 여지를 열어뒀음에도 당 지도부가 '헌재 재판관 임명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
하지만 이날 최 대행의 결정으로 여당은 스스로 입지를 좁힌 셈이 됐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할 수록 협상력은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권 비대위원장이 탄핵 반대파(반탄파)를 의식한 듯한 발언만 내놓는 데 대해 당내에서는 "일단 지지층이 결집하기 시작하니 새 비대위로서도 갑자기 기존 입장을 뒤집긴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격앙된 與비대위…협상론 고개 드나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최 대행의 결정이 발표된 뒤 취재진에게 격앙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여야 합의 정신을 지키라는 최 대행은 한 총리의 결단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앞으로 최 대행이 야당 겁박에 굴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는 특검법 재협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단 헌재 재판관이 2명만 임명된 데 대해선 표면적으로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쌍특검법보다 헌재 재판관 임명을 우선했기 때문에 못마땅스럽기는 해도 "급한 불은 껐다"며 안심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제3자 추천 등 최 대행이 언급한 '위헌적 요소'라는 부분에 대해 열어놓고 다시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행이 쌍특검법은 물론, 헌재 재판관 후보자 1명에 대해서도 여야가 합의해 재추천해달라고 한 만큼, 권영세 비대위가 지금처럼 막무가내식으로 버틸 수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추후에 여야 간의 대화가 있을 때 한 번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최 대행의 재판관 임명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과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도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비대위가 당장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더라도 의원들 사이에서 협상에 응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조금씩 득세하기 시작하면 비대위로서도 강경 모드를 어느 정도는 풀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의원들 대부분 비대위에 결정을 일임한다는 분위기지만 결과적으로 지지층만 바라보다 고립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