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 이후 불과 11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기습적인 비상계엄이 선포·해제됐던 때부터 탄핵소추안이 재표결 끝에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국회 앞을 지킨 건 무수한 '시민'이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국회 앞 도로를 메우는 동안 광장의 모습도 새로워졌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11일 간의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대'와 '화합'이 강조되는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집회에서 확인된 여성 젊은층의 힘…세대 간 '화합의 장' 열린 광장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매일 시민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종로구 광화문 등 광장에 모여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특히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주말에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등 주최 측 추산 수백만 명의 시민이 운집했다.전문가들은 이번 '탄핵 촛불 집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젊은층,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이 집회의 주축이 됐다는 점을 꼽았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날인 지난 7일 오후 5시 기준 국회 주변에 모인 사람들 중 21.3%, 즉 5명 가운데 1명이 10대·20대 여성으로 나타났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젊은 여성이 집회에 많이 나왔다는 점, 케이팝(K-POP) 대중문화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한 점이 새로운 특징"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여성 혐오 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은 점, 장기적으로는 남녀 불평등이 여전한 점이 여성의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여성들은 늘 광장을 지켜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 때는 중장년층이 중심이 됐다면 이번엔 청년 여성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 즉 노래(K-POP)을 부르면서 응원봉을 흔드는 방식이 광장으로 옮겨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젊은 여성이 주도하는 집회 방식이 자칫 얼어붙거나 폭력적일 수 있는 광장 분위기를 풀어줬고 이로 인해 광장의 진입 장벽을 낮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젊은층과 중장년층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세대 간 화합'의 모습도 돋보였다. 주말마다 국회에서 열리는 집회에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의 응원봉을 들고 참여했다는 강지수(26·가명)씨는 "이번 기회에 임을 위한 행진곡, 상록수, 김광석씨의 광야에서 등 민중가요를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 추가해서 듣고 있다"며 "집회에서 많이 접하다 보니 이제 따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탄핵안이 부결된 7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옆에 계신 50대 아주머니가 '이제 곧 좋은 날이 올텐데 왜 우냐'며 위로해 줄 때 부모님 세대와 우리가 어쩌면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씨는 "젊은 세대에게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하고, 'MZ세대'라는 말 역시 꼭 긍정적인 말로 쓰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번 촛불 집회를 통해) 이들(젊은층)도 공동체 가치를 함께 알아가는 사람들이란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결제, 나눔으로 '연대'…집회 전엔 "차별 금지" 약속문 읽기
'탄핵 촛불 집회'에서 두드러졌던 또 하나의 특징은 '식당 선(先)결제'와 '나눔'으로 대표되는 연대의식이었다.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 식당 두 곳에 지난 9~10일 김밥 50줄과 만두 50판을 미리 결제 해 뒀다는 최영원(36·가명)씨는 "직장인이라 평일에 매일 집회를 갈 수 없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시민들이 든든하게 챙겨 먹고 집회를 하셨으면 해서 김밥과 만두를 선결제했다"며 "이렇게 하면 경제 활성화나 상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이돌 그룹 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선결제하거나 무언가를 나누는 게 당연한 문화다"라고 설명했다.
집회 시작 전 주최 측이 '모두의 광장'을 위해 약속문을 읊는 순서를 가졌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1만 5천여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약속문'에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며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김윤태 교수는 11일 간의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 집회에 대해 "사람들끼리 화합하려는 하나의 축제장같이 된 독특한 문화다. 다른 나라에서도 모방하거나 참고할 수 있는 21세기형 새로운 시민 저항 운동"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