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사실상 정지되면서 대중 외교의 첨병 역할을 해야할 주중대사 교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주중대사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정상적인 외교 업무 수행이 가능할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당에 자신의 거취 문제를 일임하며 사실상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2선 후퇴를 선언한 바로 다음날 윤 대통령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한 것을 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직무는 전혀 정지된 게 아니고 여전히 행사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자신 뿐만 아니라 여당에도 큰 정치적 부담을 줄 수밖에 없어 향후 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더 어려워졌다. 문제는 이로인해 당장 이번달로 예정된 주중대사 교체가 불투명해지며 대중 외교에 구멍이 발생하게 됐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정재호 현 주중대사 후임으로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내정했다. 이후 김 전 실장은 중국 측으로부터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사전 동의)을 받았고, 이번달 중순쯤 주중대사 임기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내란사태가 발생하고 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어려워지면서 중국 측에 전달할 신임장을 김 전 실장에게 내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신임장은 외교 사절을 파견할 때 국가원수끼리 주고받는 최종 인증 문서이다.
헌법 66조 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 이상 김 전 실장에게 신임장을 내줄 수 있는 주체는 현재로서는 윤 대통령 밖에 없다.
다만, 중국에서 코로나19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 2022년 8월 부임한 정 대사의 경우도 시진핑 국가주석을 직접 만나 신임장 원본을 전달한 것은 이듬해 7월이었다. 이렇게 각국 상황에 따라 신임장 전달이 늦어진 사례가 있는 만큼 중국 측이 양해한다면 신임장 제출을 좀 늦추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김 전 실장이 주중대사 임기를 시작하더라도 중국 당국이 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문제다. 내란사태로 윤 대통령의 향후 거취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중국 측이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 전 실장의 주중대사 부임을 달가워할리 없기 때문이다.
당초 중국 측은 김 전 실장의 주중대사 내정 소식에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시 "한국이 새로운 주중대사를 내정했고, 우리는 이에 관해 한국과 소통을 유지하면서 중한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유지하도록 추동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관영영자지 글로벌타임스도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 의사결정 그룹의 핵심 멤버"라며 "경제 및 무역 분야에서의 경험과 과거 중국과 가진 실용적인 교류는 그가 중국에서 전임자보다 더 나은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내란사태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중국 측이 언제 교체될지 모를 김 전 실장을 외교 파트너로 상대하기 보다는 차기 정권과 관계 정립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김 전 실장이 예정대로 부임할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정상적인 외교활동도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 7월 싱하이밍 전 대사의 이임 이후 공석이었던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 내정된 다이빙 주유엔 중국 부대사가 이르면 오는 23일 부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 신임 대사는 역으로 시 주석에게 받은 신임장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