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밸런스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물론 안녕하진 않으시겠죠. 우선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전북특별자치도(뭐가 특별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라는 촌구석의 한 방송사에 근무하는 기자랍니다. 나이가 차다 보니 보도국장이라는 직함도 달려 있구요. 전북이 어디냐 하면 아마 대통령님께서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물어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 예산을 친히 손봐주신 곳이라고 하면 금방 기억하실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렇게 사죄의 글을 올리는 것은 며칠 전 무시무시한 계엄 광풍을 겪고 보니 이제라도 대통령님께 그동안 제가 저지른 악행을 고하고 사죄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그동안 대통령님과 관련해 간디의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인 '철학없는 정치' 라느니, '尹룡이 나르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서 왜 검찰 후배들은 충성하게 만드나'는 등등의 수사(修辭)를 동원해가며 그야말로 터진 입이라고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습니다. 한 달 전 담화문을 통해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셨고 밤잠을 설친 날이 많으셨다던 대통령님. 며칠 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선포하신 계엄 내용을 보니 대통령님 입장에서 봤을 때 제가 바로 '패악질을 일삼는 망국의 원흉이자 반국가 세력'이더군요.
 
계엄이 선포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군인들이 국회 관계자들과 충돌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두렵습니다, 대통령님!"
 
계엄 얘기가 나왔으니 한 번 짚고 넘어가보죠. 저는 솔직히 그동안 대통령님을 무능하다고 봤는데 막상 이 상황을 맞고 보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신 분이고, 한다면 하는 분인 줄을 미처 몰라봤습니다. 제가 이렇게 그동안의 무례를 범했던 것에 대해 통렬한 사죄의 글을 올리는 것은 앞으로도 대통령님께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특히 지금의 위기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2차 비상계엄은 물론이고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는 극한의 공포심이 제 손가락을 컴퓨터 자판기로 강제 구인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진 못했지만 이미 그 처참함이 어떨지는 과거에 이 땅에서 빚어졌던, 그리고 또 지금도 지구촌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들은 간접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있고 또 두려움에 떨고도 있습니다. 절대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전쟁은 일어나선 안됩니다. 설마… 절대 아니겠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래도 대통령님께선 국회가 계엄해제를 의결하자 어금니를 깨물고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하셨더군요. 물론 달리 방도가 없으셨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의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결단을 내리셨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45년 전 '서울의 봄'이 '12.3 서울의 밤'으로 재현되면서 제2의 장태완, 김오랑, 정병주 같은 군인을 다시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대통령님!"
 
자녀들을 특전사와 수방사에 보낸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왜 언론 플래시를 받으며 지탄의 대상이 돼야 하나요? 명령을 따는 것이 군인 신분으로서 죄입니까? 비상계엄 상황 하에 보여 준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로 편성된 계엄군이 보여 준 내키지 않는 듯한 어정쩡한 발걸음의 시발점은 어디였습니까? 어느 외신이 조롱처럼 보도하듯 대통령님의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국민들의 아들 딸들이 '군인'이 아닌 '군홧발'이란 소릴 들어가며 매도돼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마음속으로야 '탄핵을 들먹이며 국정을 말아먹으려 드는 여당x들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펜대들'을 어떻게 해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반대편에 선 야당과 먹물을 포함한 국민들 역시 섬겨야 할 대상으로 봐야지, 군부대를 동원해 섬멸해야 할 대상으로 봐선 안되지 않습니까?
 
"돌려놓으십시오, 대통령님!"
 
이 촌놈이 보기에도 대한민국이 너무도 많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불구대천지 웬수'가 돼 싸우는 여, 야는 그렇다 치고 하루가 멀다하고 쓰러져 가는 건설업체, 비명을 지르며 임대 간판을 내거는 자영업자들, 끝이 안보이는 의료계 갈등, 진보와 보수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해 지고 있는 '합치기'가 아닌 '갈라치기', 2대 8로 나뉘어져 버린 국민들… 설마 '우수한 20'이 '나머지 80'을 이끌고 간다는 '파레토 법칙'을 염두에 두고 계시진 않겠지요? 더 늦기 전에 망가진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무엇인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되짚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이라도 용산에서 드넓은 들판 아래로 향하는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마음을 완전히 비가역적으로 돌려버리지 않고서 대통령님의 행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많을테니까요. 그리고 대통령님이 그리하시면 저도 더 이상 망국적인 패악질을 일삼지 않겠습니다.
 
통촉하옵소서, 대통령님!

전북 cbs 이균형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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