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의 반복되는 정부 인사들에 향한 탄핵소추안 발의와 예산안 강행 처리 등에 대한 '초강수' 성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번 선포 2시간 30여분 만에 국회는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고,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도 규탄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약 6시간 만에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야당은 "즉시 하야하라"고 맹공을 펼쳤고, 여당은 "참담한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尹대통령, 비상 계엄 선포 6시간 만에 해제
윤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밤 10시 23분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 제동을 걸자 약 6시간 만에 해제를 선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4시 27분쯤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생중계를 통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그러나 조금 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 바로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은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렇지만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밤 10시 30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다"며 야당을 겨냥했다. 또 "국가 예산 처리도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항 상태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하고 정부 관료 탄핵소추안을 연이어 발의하는 등 국가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헌법 77조 1항에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윤 대통령이 현 상황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봤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윤 대통령의 브리핑은 대통령실 내 다수 참모조차 실상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입기자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할 정도로 '벼락' 선포였다. 기자들이 브리핑룸에 입장을 제한당한 상태에서 윤 대통령은 브리핑룸 연단 중앙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담화문을 약 6분간 낭독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국방부는 이날 밤 11시부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등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를 대한민국 전역에 발령했다.
대통령실 경비·경호 역시 계속해서 삼엄해졌다. 자정쯤부터는 청사로 새로 들어오려는 취재진의 출입은 제한됐고, 대통령실·국방부 청사 입구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경찰과 군의 통제로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이동 역시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윤 대통령의 선포 이후 곧바로 비상계엄 해제에 나섰다.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본회의장에 모였다. 국회는 4일 오전 1시쯤 본회의를 열고 재석 의원 190인 중 190인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국회의장실은 이로써 비상계엄령은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엄법 제11조에선 '계엄 상황이 평상상태로 회복되거나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여야 대표 나란히 '비판', 후폭풍 예상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이뤄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1979년 비상계엄 조치는 '10·26 사건'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이뤄졌다. 1980년 5월 17일에는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신군부는 이를 규탄하는 집회·시위를 진압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비상계엄은 이듬해인 1981년 1월 24일까지 유지됐으며, 그 사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때 이후론 계엄령이 선포된 적은 없다.
여야는 이번 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나란히 날을 세웠다. 향후 정국의 강한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이번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 위헌"이라며 "이번 불법, 위헌의 계엄 선포로 인해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악순환을 끊어내고 다시 정상 사회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포 이후에도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자리에서 즉시 하야하라"며 "계엄을 해제해도 내란죄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오늘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며 "이번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고 책임있는 모든 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자세한 사항은 즉각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소집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7시에 최고위원회의를, 8시에 의원총회를 각각 소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