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AI(인공지능) 굴기를 막기 위해 한국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만든 반도체 AI개발에 필수 부품으로 꼽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중국 수출을 통제했다. 그 대상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도 대상에 포함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을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다"며 일단 진화에 나섰지만,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제재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국내 기업의 경영 활동이 큰 제약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부가 보다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충고가 나온다.
美 "中에 한국HBM 팔지마"…정부 "韓기업에 미칠 영향 미미"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다. AI 가속기를 가동하기 위해 필요해서 AI개발을 위한 필수 부품으로 여겨진다. 전 세계 HBM 시장의 대부분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이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HBM의 성능 단위인 '메모리 대역폭 밀도'(memory bandwidth density)가 평방밀리미터당 초당 2기가바이트(GB)보다 높은 제품을 통제하기로 했다. 이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현재 SK하이닉스의 HBM은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반면, 삼성전자가 일부 낮은 사양의 HBM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어,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삼성전자의 실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조치에 따라 HBM을 생산하는 우리 기업과 소수 국내 반도체 장비 생산 기업이 다소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향후 미국 규정이 허용하는 수출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 정부의 발표 직후 중국 상무부는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 행위이자 비시장적 방법"이라며 "중국은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부 해명에도 업계·학계 커지는 우려…'세계 최대 시장 中 버려서야'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트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중국으로 (반도체)장비나 제품 뿐만이 아니라 인력 교류도 차단하는 수준의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대중 무역 규제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다수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중국이고, 그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은 아니"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를 정부와 기업들이 빠르게 읽고 기민하게 대응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이종환 교수는 "경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시장 형성인데 중국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매우 심각한 것이고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 AI반도체가 대세가 되는 상황에선 미국 정부의 조치에 국내 기업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며 "미 정부가 한국산 첨단 반도체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는 요구하되 범용 제품은 집중적인 규제에선 제외 시켜주도록 우리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혁중 부연구위원은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서 (미 정부의 대중 규제) 메이저 업데이트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통제 폭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조치는 한국 정부도 미 정부가 통제하는 수준으로 (대중) 수출 통제 품목 관리를 해 달라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지난 9월 미 상무부 차관이 '한국 기업이 HBM을 중국이 아닌 동맹국에 공급해야 한다'고 발언했을 당시에는 우리 정부가 대중 무역 규제의 대상과 범위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하며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공식 발표가 이뤄진 만큼 첨단 반도체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 적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 정부가 대상 품목의 범위를 정하긴 했지만 우리 정부가 업계와 소통을 한 후 선제적으로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수출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로 지정될 수 있을지 등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