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왜 '부산'에 묻히려 할까

2015년 프랑스인 시작으로 이달 초 태국인까지 28구 안장
英연방과 튀르키예 등 옛 제국주의 군대식 현지매장 추정
韓 발전상 보며 사후매장도 생겨나…"싸울 가치가 있는 나라였다"

태국군 참전용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첫 안장. 연합뉴스

지난 11일 태국인 고(故) 롯 아사나판 씨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에 안장됐다. 고인은 태국군 의무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상주지구 전투와 평양진격 작전 등에서 활약한 공로로 태국 정부로부터 '승리 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후 태국에서 생을 마치고 고국 땅에 묻힌 고인의 유해가 부산으로 온 것은 유족들의 요청에서다. 지난해 국가보훈부 초청으로 방한한 유족들은 유엔묘지에서 개최된 다른 국적 참전용사의 안장식을 지켜보며 이런 결정을 내렸다. 태국군 참전용사로는 첫 사례다. 
 
고인의 딸 쏨송 차로엔퐁아난(57세) 씨는 "70여년 전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켰던 대한민국에 이제 영원히 잠들게 됐다. 아버지도 전우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실 것 같다"고 유해봉환 소감을 밝혔다. 
 
유엔 참전용사의 유엔묘지 사후 안장은 지난 2015년 5월 레몽 베르나르 프랑스 참전용사를 시작으로 롯 아사나판 씨까지 모두 28구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네덜란드 6명, 영국 5명, 미국과 프랑스, 콜롬비아 각 4명 등이다. 
 
젊은 날 짧은 인연을 맺긴 했지만 그래도 엄연한 타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구하려는 이들의 의식세계는 우리에게 낯설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듯,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길 바라는 우리네 정서와 매우 다른 것이다.
 
여기에는 '제국주의'라는 키워드가 있다. 사후 안장자 대부분의 국적에서 보듯 이들은 과거 광대한 제국을 경영해본 강대국 출신이다. 숱한 해외 원정을 경험했기에 타향에 대한 이질감도 덜한 편이다. 
 
1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투워드 부산 행사에서 블랙이글스가 참전용사가 잠들어 있는 묘지 위를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6.25전쟁 이듬해인 1951년 1월 피난지인 부산에 조성된 유엔묘지는 처음엔 영(英)연방 4개국과 튀르키예 전사자가 주축이 됐다. 한때 동서양을 대표하는 전통적 제국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파병국과 달리 이들 나라는 현지 매장이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현재 영국군 안장자 수가 892명, 튀르키예는 462명인 반면 가장 많이 파병한 미국군 안장자는 40명에 불과하다. '한 명의 전우도 내 뒤에 남겨놓지 않는다'를 모토로 유해송환에 진심인 미군의 정서는 그들과도 또 다른 셈이다. 
 
하지만 제국주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제국주의와 거리가 먼 태국이나 콜롬비아군 안장자의 존재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사후에 안장됐다. 이들을 부산으로 끌어당긴 또 다른 힘이 있는 것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자신도 그런 궁금증이 있었는데 몇 해 전 캐나다 참전군인의 말을 듣고 실마리가 풀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은 2차대전에도 참전하고 여러 곳을 다녔던 베테랑인데 자기가 싸웠던 이유를 찾은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내가 의미 없게 (전쟁에서) 싸운 게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꼈고 나중에는 옛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사례가 하나둘씩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유엔묘지는 이런 축적된 일화들을 바탕으로 매년 11월 11일 '부산을 향하여 추모행사'(Turn Toward Busan)를 이어오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이날 6.25가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우리시간 오전 11시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것이다. 롯 아사나판 씨가 우리나라에 안장된 것도 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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