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액수의 재산분할로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을 대법원이 본격 심리할 전망이다. 대법원은 SK주식에 대한 '특유재산'의 판단에 더해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 유입 등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심리불속행 기각' 기한은 이날 자정까지다.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판단은 대법원이 상고 기록을 받은 시점부터 4개월 안에만 할 수 있다.
사건을 맡은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업무시간까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하지 않았다. 기간 만료 시점이 자정까지로 원칙적으로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조계에서는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분할이 선고된 이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대신 본격적인 심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거액의 재산분할액이 뒤집힐지 관심이 쏠린다. 올해 5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최 회장이 노 과장에게 재산분할 1조 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이같은 역대급 재산분할액이 나온 데는 SK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 것이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다. 최 회장 측은 SK주식을 '특유재산(特有財産)'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다. 다만, 상대가 특유재산의 감소를 방지했거나,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나눌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태도다.
앞서 1심은 SK주식을 특유재산으로 판단, 재산분할 대상에 넣지 않았다. 다만, 2심은 "SK주식은 혼인 기간에 취득된 것으로 SK그룹 상장이나 이에 따른 SK주식의 형성 및 가치 증가와 관련해 1991년도 경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에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봤다.
SK주식의 뿌리가 된 '대한텔레콤'의 인수 자금이 된 2억8천만원의 출처도 하나의 쟁점이다. 최 회장 측은 최종현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아 '종잣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1994년 당시 약 6개월 동안 이뤄진 4단계 돈의 흐름을 근거로 들며, 대한텔레콤 주식 인수 대금은 선대 회장의 계좌에서 인출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돈 흐름 사이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며, 최 회장 측 주장을 배척했다.
항소심에서 새롭게 등장한 '300억'의 존재를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도 관심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300억원어치 약속어음과 메모가 30년 만에 딸의 이혼 소송에서 등장했다. 2심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가 태평양증권의 인수와 더불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노 전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최 회장 측은 상고심에 나서며 SK주식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기여를 인정한 원심 판단이 부당하다고도 주장했다. 상고이유서에는 항소심 재판부가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징벌과도 같은 차원'에서 판단했다는 식의 표현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 관장 측은 최 회장 측의 주장이 시대적 흐름과 혼인에 대한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맞지 않다고 의견서를 통해 반박했다.
노 관장 측은 "우리 법과 법원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 여성이 이혼할 때 그리고 상대방이 재벌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공평하게 무엇이 여성에게 주어져야 할 정당한 몫이라고 여기고 있는지 표지가 되는 사건"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30년에 이르는 혼인 기간과 '기여' 등을 고려할 때 재산 분할 비율 35%가 낮으면 낮았지, 높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상고장을 제출한 다음 날 항소심 재판부에 '확정 증명' 신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통상 확정증명은 재판이 완전히 종료된 것을 증명해 달라는 취지로 신청한다. 이를 두고 최 회장 측이 대법원에서 재산분할과 위자료 액수는 다투겠지만, 두 사람의 혼인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은 확정 지어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편,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 이후 판결문 경정(수정)을 한 것에 대해서도 별도 심리를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사건을 맡은 1부가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