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7)씨는 2001년 가족들과 연을 끊고 집을 떠났다.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이 실패하고 교통사고로 건강까지 잃으면서 무력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A씨를 찾기 위해 실종 신고를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결국 법원은 2012년 실종선고 심판을 확정했고 A씨는 '사망자'가 됐다.
서류상 사망자인 A씨의 삶은 고단했다. 성치 않은 몸에 일용직 노동마저 할 수 없던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관악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노숙자로 살며 산길에서 먹고 자던 그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찾은 곳은 산기슭에 있던 서울대였다.
A씨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대 건물 외벽 배관을 타고 창문을 통해 교수 연구실과 사무실 등을 9차례 들락날락하며 현금과 상품권 219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결국 경찰에 붙잡혀 지난달 철창 신세를 졌다.
A씨 사건을 넘겨받은 3년 차 B검사는 혐의보다 기구한 그의 사연에 눈길이 갔다. 법원의 실종선고로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받는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도 받지 못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있던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다른 귀중품에는 손을 대지 않고 매번 식사비로 쓸 소정의 현금만 훔친 것도 딱한 지점이었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 등 피해자 10명이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A씨도 갱생보호 프로그램을 받고 사회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B검사는 A씨 구속을 취소하는 동시에 취업교육 이수 조건부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법원에도 실종선고 취소를 직접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 5일 A씨 실종선고 취소를 결정했다. A씨는 이날(8일)부터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시설에서 살며 취업 교육 등을 받게 됐다.
A씨는 검사실에 보낸 손편지에서 "세상에 따뜻하고 약자를 보듬어주는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다. 검사님과 수사관님의 헌신과 애씀을 어떻게 외면하고 다시 감히 나쁜 짓을 하겠나"라며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터전에서 열심히 한번 살아보겠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적정한 처분을 하고 사건관계인 권익을 보호하는 따뜻한 검찰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