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상생안 도출을 목표로 지난 7월 출범한 협의체가 다음주 초 합의 타결여부와 관련해 기로에 선다.
양측 협상을 중재해온 공익위원들은 그간 열한 차례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중재원칙을 제시하고, 최종 양보안을 오는 11일까지 제시하라고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에 요청했다.
공익위원들은 쿠팡과 배민 측 최종안을 보고 합의 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상생안 최종 도출을 위한 12차 회의를 열 방침이다. 다만 플랫폼 측 최종안이 미흡해 도저히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 경우 협상이 결렬된 거로 보고, 조정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11차 회의서도 수수료 합의 불발…공익위, 중재 원칙 발표
8일 이정희 위원장(공익위원)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날 11차 회의 결과 및 그간의 논의 상황을 종합해 마련한 공익위원 중재원칙을 발표했다. 간극을 많이 좁혔음에도 수수료율 합의가 지연되자 좀 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것이다.
우선 중개수수료율은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고려해 가게 매출액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을 원칙으로 한다. 최대 수수료율을 현행 9.8%보다 낮추고 평균 6.8%를 넘지 않도록 하되, 가게 매출 하위 20%에 대해서는 2%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한다.
또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배달비는 현 수준인 1900~2900원(지역별 차이) 정액제를 유지, 수수료율 완화로 인한 배달비 부담이 업체로 전가되지 않도록 한다. 배달비는 실제 일정액을 자영업자가 부담하고 있기에 소비자 대상으로 '무료배달' 용어를 사용한 홍보는 중단토록 한다.
수수료율 차등적용제는 이번 협의 과정에서 배민이 마련한 상생안을 다듬어 차용한 것이다. 배민은 최대 수수료율은 현행 9.8%를 유지하되 입점업체들을 매출액별로 분류해 하위 업체는 최소 2%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안을 제시했는데, 최대 수수료율을 낮춰 모든 업체가 기존보다 부담을 덜고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도 좀 더 넓히자는 취지다.
입점업체 부담 중 배달비는 당초 논의 범위엔 없었지만 쿠팡 측이 현행 9.8%의 수수료율을 5%까지 낮추는 대신 배달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포함됐다. 업체들로선 수수료율 외에 부담해야 하는 플랫폼 관련 비용이 증가할 경우 수수료율을 낮추는 게 의미가 없어서다.
이 위원장은 "쿠팡이츠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중재 원칙에 가까운 수준의 상생방안을 새로이 제시할 것을, 배달의민족엔 현재의 상생방안에 대해 개선점 검토를 요청했다"면서 "월요일(11일) 플랫폼들이 중재원칙을 받아들이면 수수료 관련 문제는 전체적인 합의를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중재원칙에서 평균 수수료율 기준점을 6.8%, 최대 배달비를 2900원으로 잡은 배경에 대해서는 "배민이 지난 8월부터 현행 9.8%를 적용하기 이전에 갖고 있던 기준이 수수료율 6.8%에 배달비 3200원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입점업체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양보를 해야 하는 플랫폼 입장 등 시장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익위는 입점업체의 가격 결정권을 침해하고 배달플랫폼 간의 수수료 인하 경쟁을 방해하는 '배달앱 멤버십 이용 혜택 제공조건'은 즉시 중단토록 하는 내용도 중재원칙에 담았다. 이와 관련해선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민의 공정거래법상 '최혜대우 금지'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조사 결과에 따른 시정 가능성도 열려 있다.
무엇보다 공익위는 상생안 합의 타결을 전제로 향후 협의체 상설화도 제안했다. 상생방안의 준수 여부, 분쟁 조정, 시장변화에 따른 합의 조정 등을 지속 논의하자는 취지다.
다만 이날 공익위가 밝힌 중재원칙은 어디까지나 상생안 최종 도출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일 뿐, 당초 협의체가 상생안 도출이 최종 실패로 판명날 경우 내놓기로 한 '공익위원 조정안'은 아니다.
이 위원장은 "11일 쿠팡과 배민의 최종 의견을 받아보고 합의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12차 회의를 열어 상생안 도출 노력을 지속하고, 도저히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협상이 결렬된 거로 보고 조정안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합의 가능성 미지수…'규제' 대신 '상생협의' 택한 공정위 결정 '시험대'
최종 합의를 위해선 업계 쿠팡과 배민 측 각각의 양보도 필요하지만, 업계 1·2위인 두 업체가 함께 받아들일 조건 마련도 관건이다. 배민은 쿠팡보다 좀 더 합의 가능성이 큰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경쟁사(쿠팡)도 맞춰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기도 했다.
또 입점업체 협상 대표로 나선 단체들은 추가 할증 없는 2~5% 수수료율 적용을 일괄된 의견으로 제시하고 있어 업체 측 양보도 필요하다. 관련해 한 입점업체 측 협상 관계자는 "영세 소상공인들이 빨리 2%의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는데, 업체 측 합의 수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 입점업체 측 협상에는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외식산업협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전국상인연합회가 나서고 있지만 소속 업체 규모와 이해가 다른 점도 협상 지연 요인으로 꼽혔다.
한편 쿠팡, 배민과 함께 플랫폼 측 대표로 협상해온 민간배달앱 '요기요'는 설사 합의가 결렬되더라도 이번에 제시한 상생안을 자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플랫폼 측 또 다른 협상대표인 공공배달앱 '땡겨요'는 정부가 별도로 추진하는 공공배달앱 활성화 조치에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자체·배달앱별로 흩어진 공공배달앱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통합포탈(앱)을 구축해 홍보하고, 공공배달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등록해 사용할 수 잇도록 전통시장 카테고리 마련에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는 지난 7월 3일 정부에서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같은 달 23일 출범했다. 양측의 대립을 중재할 전문가 공익위원 및 논의과정을 지원할 관계부처 특별위원도 참여하며 지난 11월 7일 11차 회의까지 진행한 상황이다.
당초 목표는 '10월 중 상생안 마련'이었지만, 최대 쟁점인 수수료 관련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다른 쟁점으로 △소비자 영수증에 각종 수수료와 배달비 등 플랫폼 관련 부담 항목 별도 표기 △입점업체에도 배달기사 위치정보 제공에 대해 원칙적 합의한 성과가 있지만, 만약 다음주 수수료 합의가 끝내 불발될 경우 이들 합의사항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극적 합의 타결로 상생안이 도출되든, 공익위 조정안이 발표되든 두 가지 모두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남은 과제다. 이번 협의를 주관해온 공정위는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갑질'을 '규제'하는 대신 '상생협의'를 방향으로 삼았는데, 일각에선 내수 침체와 자영업자 위기로 입점업체들이 당면한 위기 해결에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은 이번 논의와 별도로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달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갈등은 애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풀린 유동성이 배달플랫폼으로 흘러가 배민과 쿠팡은 '유통공룡'으로 성장한 반면, 입점업체들은 이후 닥친 내수침체 속 점점 과도해진 플랫폼 관련 지출로 어려움이 가중한 만큼 '규제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는 취지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