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결정 관련 '실기론'에 대해 "환자를 일부러 많이 아프게 하고 약을 쓴 다음 명의라고 하냐"며 정면 반박했다. 또 향후 국내 통화정책 방향에서 환율 수준이 다시 고려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G20 출장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한은이 미리 금리인상을 충분히 했더라면 최근 금리인하의 효과가 컸을 것'이라는 취지의 지적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이 총재는 "환자가 왔는데 굉장히 아프게 만든 다음 약을 주고, 조금 나으면 '내가 낫게 했으니 명의다'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며 "당시 금리를 많이 올렸으면 자영업자는 더 힘들고, 부동산 PF도 망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2%대로 안착할 것으로 예상됐으면 7월에 기준금리를 낮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하 실기론'에는 "반드시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다만 "지금 환율을 보면 (금리를) 천천히 내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내렸다면 지금 환율이 1380원보다 더 올라서 복잡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총재는 "달러 환율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굉장히 높게 올라 있고 상승 속도도 크다"며 "지난번(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는 고려 요인이 아니었던 환율도 다시 고려 요인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에 베팅하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과 함께 미국의 경제지표가 예상 밖 호조를 이어가면서 강달러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은 한 달새 약 80원 올라 1400원을 앞두고 있다.
이 총재는 내달 금통위에서 △수출 증가율 둔화세가 내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 △거시건전성 정책의 금융안정 효과 △미 대선이 끝난 뒤 달러 강세 지속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발표된 3분기 성장률이 전망치보다 0.4%p 낮은 0.1%에 그치며 올해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이 불가피해진 상황과 관련해서도 "성장률이 갑자기 망가져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4분기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 해도 추세적으로 올해 성장률은 잠재 성장률 2%보다는 높을 것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분기별 자료의 변동성을 이번에 처음 보는데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버리액션'(과잉 반응)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