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내년말 전국 확대시행을 사실상 포기하고 관할 지자체에 시행 여부를 맡기기로 했다. 지난 2년간 시행유예와 축소시행을 거쳐 추진되는 이번 조치는 환경정책의 포기로 비판받고 있다.
25일 환경부에 따르면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전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종합감사에 출석해 '일회용컵 보증금제 개선 방향'을 보고했다. 지자체에 시행 권한 부여, 중심상권부터 점진적 전국 확대, 프랜차이즈 단위 자발적 시행 촉진 등이 담겼다.
김 장관은 "현 제도를 획일적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라며 "실무 협의·논의 중인 안으로 국회·지방자치단체·업계 등과 협의 후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증금제는 일회용컵에 300원의 보증금을 붙여 음료를 판매한 뒤 일회용컵 반환시 보증금을 소비자에 반납하는 게 골자다. 환경부의 이번 방안에는 보증금 액수도 지자체가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 담겼다.
확정되지 않았다지만, 국가 시책이 아닌 지자체 위임으로의 방향 전환 자체는 환경부의 '후퇴'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별 자율에 맡겨져 지역에 따라 시행 여부가 달라지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시행 지역에서 보증금을 내고 구입한 음료를 섭취하면서 미시행 지역으로 이동한 소비자는 컵을 반납하지도 못하고 보증금도 날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형평성 논란과 소비자 불편이 누적돼 제도 폐지로 갈 공산이 크다.
환경부의 방침은 감사원과도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공익감사를 거쳐 "법률 취지에 맞게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환경부 장관에게 통보한 감사원 결정에 사실상 반한다.
환경부는 보증금제에 대해 유예를 반복했다. 2020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을 통해 2022년 6월 10일 전국 시행이 규정된 이 제도를, 환경부는 법 개정도 없이 그 해 12월 2일로 시행 유예했다. 다시 시행 시점이 되자 시행 지역을 제주·세종 2곳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지역은 이로부터 3년 이내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2025년 12월 전국 시행을 앞두고 환경부가 거듭 판을 흔든 셈이다.
특히 환경부는 보증금제 전국 시행에 부정적 여론 형성을 위해 국회·학계·언론 등 '우군화 가능성' 집단을 동원하겠다는 전략까지 세웠던 게 들통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들 조치는 모두 정권교체 뒤 단행됐다. 플라스틱빨대 사용금지 무기한 유예(지난해 11월), 택배 과대포장 단속 2년 유예(올해 3월) 등 정권교체 이후 환경정책 후퇴 사례는 더 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도 정권교체 뒤 뒤집혔다.
환경부가 정책을 번복할 때마다 강조한 이유는 '소상공인의 부담'이었다. 그러나 컵보증금 라벨 생산업체, 종이빨대 제작업체 등이 환경부 정책 철회로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은 감안되지 못했다. 환경정책의 일관성 훼손으로 야기될 피해가 또다른 소상공인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녹색연합은 성명을 내고 "한 해 294억개가 사용되는 일회용컵에 대해 어떤 정책도 펴지 않겠다는 입장은 환경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서울환경연합도 "환경부는 보증금제를 폐지하고 싶었던 속내를 드러내고, 책임과 역할을 지역에 떠넘겼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