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관련, 과거와 달리 인류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대책 마련 역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22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국내외 석학들이 바라본 저출산·고령화의 영향과 해법'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해외 언론에서는 전 세계 주요국의 출산율 하락 현상을 인구구조의 '한국화' (South Koreanification)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이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한국은 초저출생, 초고령사회, 초인구절벽이라는 3초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인구감소, 과거와 다른 점…인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
기조연설에 나선 니콜라스 에버슈타드 미국기업연구소 박사는 전 세계적인 인구구조 변화 양상에 대해 "한국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지만, 인류는 이미 인구감소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했다.이어 "이는 과거 흑사병처럼 외부적 요인에 의한 인구감소가 아니라 인류의 자발적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는 점이 특징"이라며 "앞으로 인류는 인구감소·노화가 상수가 된 사회를 대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스튜어트 기텔 바스텐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도 인구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텔 바스텐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을 단순히 당장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의 실패를 알리는 '징후'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결국 우리가 미래에 어떤 종류의 사회를 원하는 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며 "단순 인구 중심 접근에서 사회 중심 접근으로, 정책 집행도 하향식 접근에서 상향식 접근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토마스 소보트카 비엔나인구학연구소 박사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혼인문화'를 비롯한 저출산 트렌드를 비교했다.
소보트카 박사는 "동거 형태가 다양하고, 결혼-출산 간 연계가 약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결혼 이외의 동거 형태가 제한적이고, 결혼 이후 출산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이어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재정 지원 정책은 결국 출산율 반등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2032년 노동 인력 부족 심각해질 것"
마지막 발제를 맡은 서울대 이철희 교수는 한국을 사례로 저출산고령화가 지역별·산업별 노동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2032년 전국적으로 노동 인력 부족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으로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약 49만 명 부족),△숙박 및 음식점업(약 25만 명 부족), △ 정보통신업(약 16만 명 부족) 등을 꼽았다.
지역별로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정보통신 및 과학기술서비스업 등 고기술 업종에서 노동부족에 직면하고, 울산 등 동남권에서는 제조업 전반에서 대규모 노동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지역별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을 고려한 맞춤형 인구정책을 전략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경연 원장의 진행 아래 이뤄진 종합토론에서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이슈 차원의 접근보다는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전문가들은 출산율 하락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기대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현상임을 지적하면서 노동시장, 주거환경, 교육체계 등 과거 팽창시대에 형성되었던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구감소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정해진 미래라면 지금부터라도 '누구도 낭비되지 않는'(NOW : No One is Wasted) 사회를 정착시켜 개개인 한명 한명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에 대한 접근이 보장된 포용적 사회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