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은 침묵하지 않는다…'죽음의 구도자' 검시조사관

현장을 살피는 검시조사관. 제주경찰청 제공

'하루 평균 2.5건, 한해 800여 건.'
 
제주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소속 검시조사관이 매일, 매해 마주하는 시신들의 수다. 이들은 도내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억울한 죽음이 없었는지 살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시신에서 진실을 찾는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눈빛과 표정은 마치 '구도자'와 같다.
 
◇죽음의 진실, 추적하는 검시조사관
 
검시조사관은 원인이 분명치 않은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시신을 조사해 사망 원인과 시간,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는 전문 인력이다. 경찰에 속한 보건의료직 공무원으로, 간호사나 임상병리사 등의 자격은 필수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여러 죽음을 살펴보는 과학수사관이다.
 
제주경찰청에는 2005년부터 검시조사관이 배치됐다. 현재 모두 7명이 근무하고 있다. '고유정 사건' '중학생 살인사건' '바둑 살인사건' 등 주요 사건사고 현장에 '그림자'처럼 있다. 
 
간호사 일을 하다 2010년부터 6월부터 검시조사관 일을 하고 있다는 박조연(42) 조사관은 "범죄 관련성이 있는지 시신의 피부와 시신이 놓여 있는 현장을 확인한다. 범죄를 의심할 만한 손상을 확인해서 수사 단서를 제공한다. 쉽게 말해 범죄 관련성, 자살과 타살을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박조연, 정성우, 강지훈, 오나현 검시조사관. 고상현 기자

112 출동 지령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검시조사관은 시신 겉모습부터 주변 상황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남아있는 작은 흔적이 범죄 해결에 큰 단서가 돼서다. 그만큼 작업 도구도 특별하다. 작업복 주머니에는 늘 겸자와 블루라이트 손전등, 줄자 등 10여 개의 과학수사 도구가 들어있다.
 
3년차 검시조사관인 정성우(33) 조사관은 직접 작업복을 입고 수사 도구를 꺼내가며 설명을 했다. 그는 "조그마한 상처라도 단서가 되기 때문에 정밀한 도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억울한 시신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검시하는 시신은 대부분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람이다. 사망 원인을 보면 사회적인 현상도 엿볼 수 있다. 2021년부터 일을 시작한 오나현(31) 검시조사관은 "시신을 검시하다 보면 자살하신 분들이 많다. 가정불화나 수천만 원 빚 때문에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자칫 미제로 남을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건은 '바둑 살인사건'이다. 지난해 7월 서귀포시 한 주택에서 50대 남성이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졌다. 자칫 '자살'로 보일 수 있었지만, 검시조사관이 '타살' 혐의를 밝혀냈다. 상처가 스스로 낼 수 없는 상처였던 것이다.
 
박조연 조사관은 "당시 시신이 벽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몸을 살펴보니 9군데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각도 등을 봤을 때 스스로 낼 수 없는 상처였다"고 기억했다. 결국 옆방에 살던 A(69)씨가 범인으로 지목돼 '징역 15년'을 받았다.
 
'중학생 살인사건' 현장 모습. 고상현 기자

'중학생 살인사건'도 검시조사관의 활약이 빛났다. 2021년 7월 제주시 한 주택에서 B(16)군이 손발 모두 테이프로 결박된 채 목 졸려 사망했다. 범인은 B군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였던 백광석(51)과 그의 지인 김시남(49)이다. 이들은 수사부터 재판 내내 서로에게 살해 책임을 떠넘겼다.
 
분명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서로 살해했다고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검시조사관은 시신 손발에 감겨있던 '테이프'를 일일이 떼어내 유전자 감식을 벌였다. 살해 도구인 허리띠도 감정이 이뤄졌다. 그 결과 주요 범행 도구에서 백광석과 김시남의 유전자가 모두 검출됐다.
 
결국 검시조사관의 활약으로 백광석과 김시남 모두 어느 누구하나 가벼운 처벌이 아닌 중형을 받았다. 백광석과 김시남은 각각 '징역 30년'과 '징역 27년'을 확정 받아 수감 중이다.
 
◇잔혹한 사건 현장…트라우마로 남아
 
미국 법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화려해보이지만, 검시조사관 역시 '한 사람'이다. 업무를 떠나 시신을 대할 때는 장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우를 다한다고 한다. 
 
오나현 검시조사관은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사고 현장에 들어갈 때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시신의 팔과 다리 등을 살펴볼 때마다 정중히 '확인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매일 마주하는 잔혹한 사건 현장과 시신의 모습은 검시조사관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4년차인 박조연 조사관은 "잔혹한 사건을 많이 접하다 보니 운전하다가도 사건 현장을 지나치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큰 사건이라 해도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지우는 편"이라고 토로했다.
 
추락사고 현장을 살펴보는 검시조사관. 제주경찰청 제공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강지훈(32) 검시조사관은 "현장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어린아이 시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애를 키우다 보니 내 일처럼 가슴이 아프다. 특히 친척의 시신을 보는 일도 있는데 그때는 한 사람으로서 감정적으로 힘들다"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도내 사건사고 현장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죽음의 구도자' 검시조사관. 매일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그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며 시신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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