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예상과는 달리 잠잠하다. 지난 15일 김 여사의 '오빠'가 담겨 있는 카카오톡 대화 공개로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뒤, "매일 하나씩 폭로하겠다"고 벼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를 두고 명씨의 폭로를 부추겼던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발언을 자제하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고소·고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사실상 꼬리를 내렸기 때문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명씨를 향해 "고소장을 써놨다"고 으름장만 놨을 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명씨의 위협에는 어떤 실체가 있는 걸까. 김 최고위원의 침묵에는 윤 대통령 부부 문제를 폭로하겠다는 엄포가 부담으로 작용한 모양새다. 다른 두 사람은? 홍 시장과 오 시장의 공통점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명씨가 쥐고 있는 카드는 윤 대통령 부부와의 대화 캡처일 뿐만 아니라, 여권 유력 정치인들의 '실정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증거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명씨는 "(본인이 입을 열면) 대통령이 하야·탄핵될 것"이라며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위협해 왔다. 또 "홍준표하고 오세훈이도 까불면 내가 정치자금법으로 어떻게 가서 엮는지 보시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명씨가 '여론 조작' 의혹이 제기된 당일 '대화 캡처 폭로' 위협과 '오빠는 누구인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실정법 위반과 직결된 '불법 여론조사-대가' 관련 의혹들을 가리기 위한 '시선 돌리기'라는 의심도 존재한다.
특히 명씨는 "내가 사기꾼이면 너희들은 뭐냐"며 "너희들 중에 밥값, 숙박비, 차비 한번 준 놈 있냐. 이제 와 내 몸에 땀과 기름 냄새가 난다고 자기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 나보고 사기꾼? 사기꾼을 사기 친 니놈들은 뭐냐"라고 항변한 바 있다.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취지다.
만약 선거를 앞뒀던 후보들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부탁했는데,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정자법상 '기부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또 만약 후보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라고 지시했고 이 같은 조사들이 '조작' 등 위법적인 것이었다면 대가 지불 여부와 무관하게 '업무방해 공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실제 '여론조사비 대납' 정황이 17일 한겨레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명씨가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당시 후보)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매일 같이 돌렸는데, 그 비용을 그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던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대신 납부했다는 의혹이다.
비용을 냈던 예비후보들이 이후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명씨 측에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이 보전 받은 선거비용으로 이를 갚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여론조사비 대납에 대한 대가로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를 강화하고 있다.
명씨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본인에게 '잘 했다'는 취지로 이른바 '체리 따봉'도 보내줬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후보자일 당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의뢰해 수차례 보고 받았다면 정자법 위반 소지가 있다. 또 다른 이들이 대신 여론조사 비용을 납부해 준 뒤 대통령에 당선돼 공천 등에 관여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정당의 후보자 추천 관련 금품수수금지)이 될 수 있다. 다만 금품수수 등과 후보자 추천의 연관성이 증명돼야 한다.
명씨의 폭로는 잠시 멈췄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명씨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언론이었지만, 이후 벌어진 그의 폭로는 본인 존재에 대한 대통령실의 거리두기와 여권 인사들의 멸시와 무시가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