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산 대금 규모가 무려 1조3천억원대에 달하는 이른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이 2019년부터 사업으로 발생한 소득에 대한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법인을 통해 사실상 국내에서 왕성하게 사업을 하고도 세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납세 의무를 피한 모양새다.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구 회장은 2019년 이후 단 한 번의 사업소득세 신고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유는 구 회장이 국내 '비거주자'로 분류됐기 때문.
국내 세법상 국내에 주소를 두지 않거나 1년 365일 중 183일 이상 거소를 두지 않은 경우 '비거주자'로 판단돼 납세의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다만 183일 국내 거소를 두지 않은 개인이라도 직업이나 자산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세 당국이 거주자로 판정하는 경우도 있다.
구 회장은 최소한 2019년부터 국내에 183일 이상 체류하지 않고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은 과세 대상인지 따질 때 '비거주자'로 판단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로 구 대표가 큐텐 등 해외 법인을 통해 티몬과 위메프 등을 실제 지배·경영하면서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사업을 했던 정황은 구 대표를 '거주자'로 해석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즉,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구 회장이 2019년 과세 당국에 자신을 비거주자라고 주장하면서 전년도(2018년) 납부 세금에 대한 환급을 요청했고, 국세청이 이를 받아들여 세금을 돌려줬다는 것이다. 사실상 '면세부'를 받은 구 회장의 세금 신고 의무가 사라진 순간이다.
당시 과세 당국은 △싱가포르 등에서 주로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고 △183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지 않고 △가족 등도 대부분 해외에 머물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구 회장을 '비거주자'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1억 이상 계약은 사전승인'…계열사 곳곳에 구 회장 손길
구 회장은 싱가포르 소재의 큐텐 본사를 통해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까지 국내의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을 지배·경영했다. 이렇듯 구 회장이 국내 소비자와 판매자를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 막대한 돈을 챙긴 점을 고려하면 구 회장에 대한 '비거주자'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BS노컷뉴스가 확인한 큐텐그룹 내규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등 계열사에서 1억원 이상의 연봉 계약자나 실장급 이상의 승진, 임직원의 성과급 지급 기준 결정 등 사항은 구 회장의 사전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 회장의 실제 지배 영향력이 계열사 구석구석까지 미쳤다고 해석되는 정황이다. 큐텐그룹 핵심 관계자는 "구 회장이 사실상 모든 실권을 쥐고 황제경영을 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또 큐텐그룹의 국내 계열사인 큐익스프레스에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2년간 사내이사를 지냈다. 큐익스프레스는 구 대표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던 회사다.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면 구 대표가 엄청난 이익을 얻을 구조였던 것이다.
게다가 구 회장은 국내 큐텐테크놀로지에서도 등기이사를 지냈다. 구체적으로 보면, 큐텐테크놀러지에서는 2010년부터 2015년 8월까지 등기이사, 2012년부터 2015년 8월까지는 대표이사를 맡았다. 큐텐테크놀로지는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 등 큐텐그룹 계열사의 재무·회계·인사·법무 등 기능을 통합 관리한 '알짜' 회사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티몬·위메프 사태 전담수사팀(이준동 부장검사)은 구 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구영배 1인이 큐텐, 큐텐테크놀로지, 큐익스프레스 유한회사, 큐익스프레스, 티몬, 위메프 등 큐텐그룹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구 회장은 CBS노컷뉴스에 "큐텐을 시작하고 계속 투자만 했으며 큐텐 재팬 매각 때도 제 지분은 매각하지 않았다. 큐텐 재팬 매각 대금은 큐텐본사(싱가포르)로 들어왔다"며 "지금까지 전혀 수익을 실현한 것이 없으며 G마켓 매각으로 번 돈의 대부분도 큐텐에 (재)투자했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1조5900억원 상당의 물품 판매 등 관련 정산대금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티몬·위메프에 6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미국 전자상거래 회사 인수대금 등으로 티몬·위메프 자금 671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는다.
구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