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75주년 만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양 정상은 경제, 방산 협력 강화와 함께 지난해 9월 서명된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발효시키기로 했다. 필리핀이 추진 중인 여러 인프라 사업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양국 국민들의 인적 교류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양 정상은 북핵 도발과 러북 군사협력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윤 대통령은 필리핀 국빈 방문 둘째 날인 이날 '말라카냥궁'에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언론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필리핀은 75년 전 동남아 국가 중에 최초로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라며 "오늘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해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1949년 수교 이래 양국이 공식적으로 양자 관계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정상 차원의 공동 문건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 정상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통해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방산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특히 필리핀의 군 현대화 3단계 사업에 한국이 적극 참여해 나가기로 했다"며 "오늘 체결된 해양협력 MOU(업무협약)를 통해 해상 초국가범죄 대응 정보 교환, 수색 구조와 같은 해양안보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경제협력과 관련해선 "작년 9월 서명된 한·필리핀 FTA를 조속히 발효시켜 양국의 무역과 투자를 촉진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한·필리핀 FTA를 체결했으며, 지난달 우리 정부는 국회에 '한·필리핀 FTA 비준 동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어 "양국 정부는 '라구나 호수 순환도로'와 'PGN 해상교량' 건설 사업에 대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해당 사업들을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활용해 추진하기로 했다"며 "이 두 사업은 지원 규모가 각각 10억 불(1조 3468억 원) 상당으로 EDCF 사업 기준 역대 1, 2위의 대형 개발협력 사업이며 한국 기업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국은 필리핀이 추진 중인 여러 인프라 사업에 세계적인 경험과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며 "농업 분야의 협력을 확대해 식량 안보를 함께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필리핀 내 한국 농기계 생산 단지도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尹 "바탄 원전 재개 MOU 체결…양국 원전 협력 기반 강화"
윤 대통령은 양국 간 '원전 협력'에 대해 "바탄 원전 재개 타당성 조사 MOU 체결을 계기로 양국 간 원전 협력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탄 원전은 1976년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착공을 시작해 1984년 완공됐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우리 고리 2호기와 형태가 같으며, 621메가와트(MW) 규모다. 필리핀 에너지부와 '바탄 원전 타당성 조사 MOU'를 체결한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건설 재개 관련 경제성, 안전성 등 사업 추진의 타당성을 조사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또 디지털 지원에 대해선 "한국은 디지털 선도국으로서 공공행정 부문 디지털화를 비롯한 필리핀의 디지털 전환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적 교류와 관련해선 지난해 필리핀을 가장 많이 찾은 외국인이 한국인(145만 명)인 점을 언급하면서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아가는 한편, 양국 국민들의 권익과 안전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지역 및 국제 문제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나아가기로 의견을 모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과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필리핀은 우리 정부의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연대 구상과 인태(인도·태평양) 전략의 이행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협력 대상국"이라며 "우리 두 정상은 북한의 핵 개발과 무모한 도발, 그리고 불법적인 러북 군사 협력을 국제사회가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고 앞으로도 북한의 비핵화와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며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 한반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리라는 점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 두 정상은 역내 핵심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 안정,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며 "양국은 남중국 해상 규칙에 기반한 해양 질서의 확립과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를 위해 계속 협력해 나아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