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꾸리겠다며 의료계에 참여를 촉구했지만 주요 의사단체들이 끝내 불참을 선언했다.
정부가 '전공의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처음으로 사과 의사를 밝히고 대한의사협회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한때 대화의 조짐도 엿보였으나 결국 또다시 '불통의 길'로 접어들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의사단체들은 정부의 의사인력 추계위원회 위원 추천을 끝내 거부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지난 2일 연석회의를 마치고 "정부가 2025년도 의대정원을 포함해 의제의 제한 없이 논의할 것을 요구한다"며 "보건복지부가 10월 18일까지 요구한 '의사인력 추계위원회 위원 추천'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2025년도 입시 절차가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2025년도 의대정원 증원 철회가 불가능한 것처럼 언론을 통해 호도한다"며 "2025년도 입시가 완전히 종료되기 전까지는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어 "정부는 의제의 제한 없이 논의하자고 한다"며 "그러니 2025년도 의대정원을 포함해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 "미안한 마음" 손짓에 의협 "긍정적 변화" 평가했지만
앞서 정부는 전공의를 향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의료계에 손짓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공의를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후 정부 인사가 공개 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의료계를 추계위원회로 불러들이기 위해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됐다. 의료계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한때 의정간 소통이 열릴 가능성도 엿보였다.
의협 최안나 대변인은 조 장관의 발언에 대해 "지난 7개월간 의사 악마화에 몰두해 온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처음 표현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도에 초래될 의대 교육의 파탄을 이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026년도부터는 감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줄곧 주장해 온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공백의 핵심인 전공의단체가 강력 반발하면서 대화 가능성도 사그라들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조 장관의 사과 하루 뒤인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2025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입장 변화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의협이 2025년도 의대 증원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석이 담긴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재자 강조하지만, 의협 임현택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임 회장은 아무렇게나 지껄이지 마시기 마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의대 교수 "객관성·투명성 의문"…'반쪽짜리 추계위' 가능성도
더구나 의대 중에서도 상징성이 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추계기구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면서 의료계의 참여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객관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추계기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산하이고, 최종 의사결정은 보건의료정책심의의원회(보정심)에서 이뤄지는 등 모두 정부 기관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또 보정심은 '2천명 의대 증원' 논의와 결정이 이뤄진 기구기도 하다.
비대위는 "같은 기관이 향후 동일한 실책을 반복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의료인력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오는 18일까지 의료계 단체들을 설득해 추계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요 의사단체와 전공의 및 의대생 단체도 불참 의사를 밝혀 현재로서는 병원협회만 참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경우 사용자단체만 참여하는 '반쪽짜리 추계위원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추계기구 내) 공급자단체에 누가 들어가겠나. 대한병원협회는 사용자단체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